아이티는 비극의 땅인가.
그만큼 일그러진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히스파니올라섬(아이티는 섬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에 상륙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격변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땅의 백성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아이티 역사에서 3명의 악명 높은 정치인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은 나락의 길에 빠져든다. 황제가 된 독립 운동가, 대를 이어 집권한 독재 가문, 부정부패로 얼룩진 신학자 출신 대통령….
장 자크 데살린은 1804년 프랑스 혁명에 자극받은 해방 노예들과 현지 백인들이 프랑스를 쫓아낼 때 반란군 지도자였다. 무려 10만 명의 흑인들과 2만 4천 명의 백인들이 희생되면서 이룬 해방이었고, 최초의 흑인 노예 국가이자 남미 첫 해방 국가였다. 그러나 데살린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꿈은 깨졌다. 함께 싸운 백인들을 학살했고 국민들을 농장에 몰아넣어 강제 노동을 시켰다. 데살린이 3년 만에 암살됐지만 그 후 정치적 혼란과 쿠데타, 부정부패가 일상처럼 됐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들어 대규모 원조를 하고 정치 개입을 계속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독재자들이 국민을 탄압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자기 잇속만 채웠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 200년 동안 무려 34번의 쿠데타가 일어나 정치 혼란과 민생 파탄이 극에 달했다. 프랑코 듀발리에는 1957년 미국의 지원으로 집권한 뒤 사병부대를 조직, 반대자들을 학살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1971년 죽었다. 19세에 불과한 아들인 장 클로드 듀발리에가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다가 1986년 미국의 압력으로 실각했다. 1990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방신학자 출신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취임 몇 달 만에 쿠데타로 망명했다.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이 파견돼 군사 정부를 축출하고 아리스티드를 복위시켰지만 부정부패, 마약 수출 등으로 말썽이 잇따랐다. 2004년 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아리스티드는 망명했다.
자연마저 아이티를 외면했다. 2008년 한 달에 4차례의 허리케인으로 국토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이달 12일 규모 7.0의 강진이 엄습했다.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티의 불행은 이것으로 영원히 끝나길 기원한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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