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대체로 에고(eoo), 즉 자아가 강한 편이다. 주로 혼자만의 작품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목소리는 크지만 그것이 하나의 힘으로 결집되기는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태현(53)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은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후배들을 위해 분주하게 활동 중인 예술가다.
2007년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가창 창작스튜디오를 가창 우록분교에 마련했다. 여기엔 전도유망한 지역 작가들과 외국인 작가 8명이 함께 생활하며 작업 중이다. 졸업 후 마땅히 작업실조차 찾을 수 없는 작가들을 위한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순수 미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장르의 예술과 소통하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최근 그가 기획한 전시 '예술, 공간을 점령하다'에는 9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가했다.
"가창은 많은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어 문화벨트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동네예요. 페스티벌도 가능하죠. 애착이 큰 곳입니다."
9년 전 가창에 들어온 그는 축사를 개조해 지금의 작업실을 꾸몄다. 대형 작품들이 많은 작업실은 유독 널찍하고 높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그가 만들어 더욱 애착이 간다. 중고 패널을 구해 이어붙이고 부자재를 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소품 하나도 허투루 고를 순 없다. 사람들은 '소품 하나에서도 작가의 정취가 느껴지는 공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돈은 안 들어도 작가의 손때 묻은 공간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낮 시간을 '공인으로서 예술가'로 산다면, 밤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이다. 가창의 칼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얼음이 꽝꽝 언 추운 작업실이지만 정작 작품 활동에 들어가면 추운 줄 모르고 빠져든다.
작업실은 그의 작품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화풍을 고집하지 않고 2, 3년마다 작업 방식을 바꾼다. 2년 전부터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숯가루를 먼지떨이에 묻혀 터치를 반복하는 작품.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의 축적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의 작업실에는 숯뿐만 아니라 온갖 안료들이 있다. 잉크, 유성물감, 아크릴 등 그는 자신만의 색과 깊이감을 찾기 위해 꾸준히 실험하고 작업한다. 그 흔적들은 작품이 되어 작업실 한 구석에 놓인다. 그 자신의 역사인 셈이다.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 그것은 예술가 본연의 떨림이리라. 작업실도 마찬가지. 가창의 지금 작업실은 최고의 여건이라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일정기간 체류할 뿐이지, 정착의 의미는 아니다.
그는 대구에 예술 인프라들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대구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인프라 구축보다 더 시급한 것은 좋은 '사람'을 키우는 겁니다. 미술뿐 아니라 전 장르의 예술가들을 육성해야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는 거죠."
외국에는 작가들만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가 있단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지원만 되더라도 작가들에겐 큰 힘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도시 디자인에 대해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순수 예술가들의 참신한 발상이 도시를 바꾼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진정한 섬유도시가 되기 위해선 순수 미술의 저력이 바탕이 돼야 해요. 밀라노도 수백년의 예술적 축적이 있었기에 섬유도시가 될 수 있었죠. 예술가의 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아름다운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그는 언젠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작업실을 짓고 싶다. 거기엔 전시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그가 꾸는 꿈이 많은 후배 예술가들과 함께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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