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신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는 어느 날 사교댄스 교습소를 찾았다. 괜히 쑥스러워 수석 첼리스트와 함께 남몰래 춤을 배웠다. 그의 춤을 보고 있던 댄스강사 왈, "스텝을 밟는 운동신경은 괜찮은데 문제는 음악이에요.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어요". 토스카니니와 함께 20세기 전반의 최고 지휘자로 평가 받는 사람이 음악적 재능을 질타받았다고 하니 재미있다.
유머러스한 인물인 듯하지만 전통을 지키고 웅대한 정신성을 추구한,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1886년 오늘, 베를린에서 태어나 청년기 때 작곡가를 꿈꿨다. 작품 평판이 좋지 않았고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수입이 나은 지휘자의 길을 택했다. 1922년 베를린 필의 지휘자가 된 뒤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전쟁 때 독일에 남아있다가 나치 협력자로 낙인찍혀 고통스런 만년을 보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의 성실한 성격에 미뤄 나치 당원이면서도 용케 빠져나와 눈 감고 지휘하는, 쇼맨십 많은 플레이보이를 좋아하지 않은 게 당연했다. 그의 사망 후 카라얀은 베를린 필의 종신 지휘자가 됐으니 아무리 대가(大家)라도 모든 걸 뜻대로 이룰 수 없는 모양이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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