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20대 중반의 주부 A씨는 잠 때문에 인생이 뒤틀렸다. 10여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온 잠에 완전히 포로가 됐다. 예고도 없이 몰려드는 잠 때문에 그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은 고개를 떨군 채 보냈고 심지어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손뼉을 치다 순식간에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잠 때문에 고교를 그만둬야 했다. 결혼을 했지만 잠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 아이를 손에서 떨어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뒤늦게 찾은 병원. 정밀검사 후 내려진 병명은 기면증. 꾸준한 치료 덕분에 증상은 나아졌지만 그녀는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간 잠을 원망하며 눈물만 흘렸다.
#사례2. 30대 초반의 B씨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자보는 것이 소원이다. 10년 전부터 누우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해 소파에 앉아서 눈을 붙였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모든 일상생활에서 힘을 잃었다. 어둑해질 무렴이면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할지 두렵기만 했다. 그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야 했던 원인은 엉뚱하게도 비만에 있었다. 기도 주변 지방이 숨구멍을 좁혔고 누우면 아래로 처져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던 것. 잘 자기 위해서는 몸속에 과도한 지방부터 줄이는 게 급선무였다.
#사례3. 심한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던 50대 주부 C씨. 잠을 자려고 눕기만 하면 다리가 찌릿하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불쾌함을 느꼈다. 일어나 걸으면 증상이 말끔해지지만 다시 누우면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 뜬눈으로 밤을 샌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신경안정제,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잠 못 자는 고통은 없어지지 않았다. 수면클리닉을 찾은 그녀는 불면증의 원인이 하지불안증후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약물 치료를 받은 뒤 비로소 그녀는 남들처럼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이 계속 잠을 자지 못한다면?
아마도 큰 고통에 시달리다가 잠을 자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죽음에 이를 지도 모른다. 그만큼 잠은 건강과 직결돼 있다. 병적인 수면장애뿐만 아니라 수면부족도 피로감을 극대화시켜 일상의 생활능력을 떨어뜨리고 각종 사고를 유발, 사회적 비용까지 치르게 하고 있다.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 우리는 잠의 가치를 무시하고, 피곤한 일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일수록 잠은 사치가 아니라 활력 있는 내일을 위한 투자다.
◆숙면이 건강생활 만든다
야근과 술자리가 잦은 강모(48)씨. 수면부족에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정을 전후해 귀가하는 날이 많지만 다음날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6시간 자기가 힘들다. 오전에는 눈이 반쯤 감겨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퇴근시간 즈음 정신을 차려보지만 밀린 업무처리에 또다시 야근을 하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고3이 되는 이모(18)양은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새벽 2시를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 까닭에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는 억지로 잠을 참아보지만 머리가 개운치 못해 학습의욕도 없다. 푹 자고 싶지만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매일 토막잠을 자며 버티고 있다.
쳇바퀴 돌듯 고단한 일상을 지속하는 직장인, 청년실업 대열에서 벗어나고 싶은 취업준비생,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에게 잠은 사치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나"고 항변하지만 수면부족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피로회복이다. 푹 자야 다음날 활기찬 하루를 열 수 있다.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각종 질환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낮에 흡수한 약한 기억들을 수면 중에 견고한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사람이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경북대병원 이호원 교수(신경과)는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질이 나쁜 잠을 자면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건강이 상하기 쉽다"며 "뇌의 피곤한 상태가 지속돼 기억력과 집중력, 판단력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액손 발데스호의 알래스카 해안 기름 유출사고, 우주선 챌린저호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사고 등 치명적인 재앙은 관리자의 수면장애에 의해 일어난 사고들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 6월까지 고속도로 교통사고 중 졸음운전이 원인이 된 사고가 23%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교통사고 사망자의 32%가 졸음 때문에 생명을 잃었다.
◆코골이 심할 땐 전문적 치료받아야
잠은 단계를 이루며 반복된다. 이 교수는 "보통 90~120분 주기로 하루밤 약 5회 정도 되풀이되는데 정신건강과 뇌의 피로회복에 필요한 잠은 보통 잠이 든 이후 60~70분 정도 지나 이른다"며 "이때 깊이 잠들지 못하면 피로회복 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아침에 일어나도 머리가 무겁고 피로한 기분이 들게 된다"고 했다.
수면시간은 성인은 평균 7~8시간, 어린이는 9~10시간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자리에 들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 잠드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거나, 자다가 자주 깨고, 깨면 다시 자기 힘든 상태가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야 한다. 무심코 지나갈 수 있지만 원인을 파악해 치료하지 않으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거나 하루 4, 5시간 자며 1주일을 지내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와 비슷한 심각한 심신장애를 겪게 된다. 기면발작,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아프리카수면병, 치명성가계불면증 등 수면장애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코골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코를 골다 수면무호흡증(코골이로 기도가 막혀 10초 이상 숨을 쉬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면 산소 포화도가 심하게 떨어져 신체 중에서 산소가 가장 많이 필요한 뇌와 심장에 심각한 혈류저하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병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증세가 심한 경우 아니라면 평소 잠자기에 좋은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등에서 허리, 엉덩이로 이어지는 척추가 S곡선을 이루게 천장을 보고 눕는 것이 이상적인 수면자세. 침대는 엉덩이 밑으로 꺼지지 않도록 딱딱한 것을, 베개는 목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부드러운 것을 사용하고 양팔은 느슨하게 풀어 배 위에 얹거나 몸 옆에 두고 다리는 나란히 쭉 뻗는 게 좋은 자세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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