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낮 영주시청 현관 앞. 한 70대 노인이 불편한 몸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채 시청을 방문했다. 휠체어에서 내려 영주시청 직원의 등에 업혀 시장실을 찾은 이 노인은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워하며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김주영 영주시장에게 내밀었다. 6천만원짜리 자기앞수표였다.
기력이 없어 발음이 다소 불분명한 이 노인의 입에서 거액의 수표를 전달하게 된 사연이 흘러나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천안함 희생장병들과 그 유족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렇게 성금을 내놓게 됐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과 유족을 위해 거액을 성금으로 기탁한 주인공은 영주에 사는 권석희(72)씨. 진폐 환자로 20여년 동안이나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는 권씨는 "신문 등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천안함 46용사들의 희생과 유족들의 비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애통해 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1972년부터 1990년까지 강원도 정선 고한읍 등 전국 각지에서 광부 생활을 한 권씨는 1990년 진폐 환자 7급 판정을 받은 후 1994년엔 진폐 3급 환자로 재판정을 받아 지금까지 병마와 싸워오고 있다. 강원도 정선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6년 전 영주로 온 권씨는 진폐는 물론 합병증 등으로 영주 성누가병원에서 줄곧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거액을 선뜻 천안함 성금으로 내놓은 권씨는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가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가 기부한 성금은 진폐 환자로 판정받아 국가에서 지급받은 보상금(월 200만원) 중 생활비와 치료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을 조금씩 저축해 모은 돈이다. 권씨는 "평소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기보다는 뜻있는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천안함 희생장병과 유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내놓게 돼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권씨로부터 6천만원을 기탁받은 영주시는 곧바로 경상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성금 전달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권씨는 마음을 모아 천안함 46용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저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희생한 천안함 장병들이 좋은 곳에 가서 영면하기를 바랍니다."
시청을 떠나는 권씨의 뒷모습을 지켜본 영주시청 공무원 김성훈(53)씨는 "없는 사람 심정을 없는 사람이 더 잘 안다는 이야기처럼 본인이 진폐 환자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보상금을 아껴 모은 거액의 돈을 선뜻 천안함 성금으로 내놓은 할아버지의 마음과 선행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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