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신이 아니라 타인 위해 희생
강렬한 노란색의 보리밭과 회오리 모양의 구름과 나무들, 황금빛으로 물든 풍요로운 보리밭을 사랑하여 즐겨 그렸으며, 광기와 고독으로 점철된 불행한 삶을 산 천재 화가. 한평생 형의 후원자 노릇을 하다가 형이 죽은 후 6개월 만에 같은 병으로 죽은 동생 테오. 이런 것들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천재 예술가의 불행과 기행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다루어온 소재이기도 하다. 박홍규 교수의 『나의 친구 빈센트』를 읽었다. 저자는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화가'가 아닌, 자기의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고 간 평범한 인간으로서 고흐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위대한 화가에게 씌어져 있는 오해와 편견이 오히려 그의 삶과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빈센트가 태어난 나라 네덜란드는 식민지와 전쟁, 내전으로 인해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에게 자유정신이 깊이 내면화된 이유다. 빈센트의 아버지는 평범하고 온화한 목사였으며, 어려서부터 집안 내력인 간질을 앓긴 했지만, 고향의 자연은 빈센트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고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빈센트는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탄광지대였던 보리나주에 전도사 자격으로 가서 머물기도 했는데, 그곳의 비참한 현실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의 배경이 된 곳이 보리나주와 가까운 프랑스 북부 탄광지역이었다. 빈센트는 보리나주 시절부터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과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담겨 있었다.
저자는 빈센트가 학구적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책을 놓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유럽 예술 전반을 꿰뚫고 있었을 만큼 이지적이었다고 한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천재 화가가 아니라 친구와 스승들의 지도를 솔직히 받아들여 지독하게 공부했으며, 화상 외에도 교사와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겪으면서 세상살이를 충분히 경험했다는 것이다.
빈센트의 자의식은 보통 사람의 그것보다 더욱 철저히 억제된 것이었으며, 평생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 사람들이나 예술에 대해 그가 견지한 유일한 태도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를 버리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헌신이었다. 저자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유정신이야말로 그의 삶과 예술의 핵심이라고 보며, 빈센트의 사상을 소박한 이타주의에 기초한 공동체주의 또는 톨스토이식의 종교적 아나키즘으로 이해한다. 이는 빈센트가 살았던 당시에 널리 유포된 것이기도 했고 특히 그가 친했던 피사로나 쇠라, 시냐크는 물론 그가 존경한 밀레, 도미에나 쿠르베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빈센트에게서 우리가 감동받는 이유는 이런 참다운 인간에게서 전해지는 풍부한 인간미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수많은 전기와 영화를 통해 잘못 알려진 빈센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지독하게 그림을 그리고 누구보다 진실하게 살려고 했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새롭게 그려 보인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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