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점자 투표지에 내 마음 콕 찍었죠"

시각장애인 6·2 지방선거 모의투표 현장

시각장애인들이 대구 달서구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에 차려진 6·2 지방선거 모의 투표 체험장에서 투표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시각장애인들이 대구 달서구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에 차려진 6·2 지방선거 모의 투표 체험장에서 투표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투표한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12일 오후 2시 대구 달서구 용산동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앞뜰.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길잡이용 지팡이에 의지한 10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실시된 모의투표 현장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로 된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는 사회복지사의 안내를 받으며 속속 투표장으로 향했다.

촉감으로 점자 투표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시각장애 1급 배진희(46·여·대구 남구 대명1동)씨는 "투표 당일에는 장애인 복지에 노력하는 후보를 최우선으로 뽑겠다"고 말했다. 전창민(34·서구 비산동·시각장애인1급)씨도 "서민과 약자를 잘 챙기는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이번 모의투표는 시선관위가 광역·기초단체장·시교육감·교육의원 등 8차례 기표를 하는 복잡한 선거를 앞두고 시각장애인들에게 투표 당일과 똑같은 경험을 하도록 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시선관위 박점숙 홍보 담당은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투표에 훨씬 열의를 보이고 있다"며 "올해 지방 선거가 여러 번 찍고 복잡한 만큼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의 투표장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도 검은색 안대를 쓰고 투표에 참여해 봤다. 안대를 쓰자마자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지팡이를 짚고 땅을 두드려봤지만 방향 감각이 잡히지 않았다. 오직 사회복지사들의 속삭이는 소리만을 듣고 투표를 마쳐야만 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눈을 가린 채 본인 확인 부스에 들러 신분증을 제시한 뒤 확인절차를 거쳤다. 이후 1차 투표용지 교부석에서 점자가 새겨진 투표용지를 받았다. 1차 투표소에선 시교육감, 교육의원, 시의원, 구(군)의원을 뽑아야 한다. 가림막이 쳐진 기표소로 들어가 4명의 후보를 차례로 뽑았다. 이어 2차 투표용지 교부석으로 향했다.

투표용지에는 시장, 구청장, 비례대표 시의원·구(군)의원에 나선 후보자 명단이 적혀 있다. 1차와 마찬가지로 기표소에서 표기를 마치고 용지를 반으로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모든 투표 과정이 점자 투표용지만 빼고는 일반 유권자 투표 절차와 같다.

시각장애인들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따가운 뙤약볕도 모의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길에 장애가 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 금창현(36·남구 대명동)씨는 "선거권을 가진 후 한번도 투표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이번 지방선거에도 꼭 투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열정은 모의 투표장을 지나던 시민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주부 이순분(41·달서구 장기동)씨는 "시각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요즘 투표날이 노는 날처럼 돼 버렸지만 이번 만큼은 꼭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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