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미 제24사단의 중앙을 주 공격로로 설정하고 공세를 취해 오던 공산군 제4돌격사단도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었다. 4천500여명의 소총수들만으로 3개 연대를 편성한 공산군은 무모한 기습공격을 되풀이하다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미군의 화력에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산군의 보충병들 중에는 궁여지책으로 남한 촌락에서 강제로 끌고 온 의용군이 대부분이었으며 그들은 기초적 군사훈련은커녕 기본무기인 보총조차 제대로 조작할 줄 몰랐다. 게다가 강제로 끌려온 이들의 절반 이상이 기회가 닿는 대로 탈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투상황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 데다 적 제4사단장 이건무 소장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보급로가 거의 끊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식량은 완전히 바닥나 버렸고 심지어 낙동강 돌출부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 보병부대에 탄약을 조달하는 긴박한 일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힘들어지고 있었다.
남침작전의 선봉부대로 공격을 전개할 당시 소지해온 탄약은 이미 오래전에 소진돼 버렸고 서울을 점령한 이후 250마일이나 남진해 오는 동안 모든 전선이 지나치게 길어져 거의 보급로가 끊기고 말았다. 고령·합천·거창을 거쳐 후속부대로 진격해오는 제2·9·10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따발총이나 보총 같은 기본화기만 소지한 채 저돌적으로 공격하다가 미 지상군의 화력에 노출되어 사상자가 속출했다. 애써 설정한 계선(界線)까지 진출해도 엄호화력이 없어 번번이 패퇴하기 일쑤였다. 폭우처럼 쏟아붓는 미 지상군의 열탄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여기에다 미 공군 전폭기편대의 집중폭격과 네이팜탄 투하, 광란적인 기총소사는 공산군 전사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초전(初戰)에 위력을 떨쳤던 소련제 T-34 탱크도 이제 막 배치된 미군의 M-24 체피 탱크에 밀려 맥을 못 추고 파괴돼 곳곳에서 꼴사납게 버려져 있었다. 병력 소모와 무기 손실이 실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적은 그동안 미 공군의 공습을 피해 주로 야간돌격을 감행해 왔으나 그것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전술에 불과했다. 미 공군 폭격기에서 조명탄을 투하하고 지상군은 지상군대로 진지에서 조명탄을 쏘아 올려 하늘과 땅, 천지를 대낮같이 밝히고 역습을 가해오는 바람에 마땅히 숨을 곳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가벼운 부상을 당한 전사들은 아예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최일선에 재배치되기 일쑤였고 중상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사망자가 속출했다. 그것이 최전선에 배치된 공산군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국공내전 당시 중국대륙에서 풍부한 전투경험을 쌓은 팔로군 출신 군사군관(보병지휘관)들과 상급전사(보병하사관)들은 이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좀체 사기가 꺾일 줄 몰랐다. 그들은 맨주먹으로도 싸울 만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이 때문에 반격전에 돌입한 미 지상군은 상대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재의 낙동강 돌출부를 뚫어야만 창녕을 기점으로 낙동강을 도하하여 대반격을 시도할 수 있으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낙동강 돌출부에 역전의 전통에 빛나는 미 해병대 제3여단이 투입되면서 코르세어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대대적인 공산군 소탕작전에 들어갔으나 '고양이에게 쫓기던 쥐가 퇴로를 잃게 되면 되레 고양이를 문다'는 격언처럼 적은 예상외로 완강하게 저항하며 역습을 가해 오기 일쑤였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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