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틀을 깨라

사람들은 피부색을 왜 '살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살색이란 색의 계열에 존재하지 않는 색인데도 우리는 임의적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부른다.

하늘은 왜 푸르다고만 생각하는가. 때로는 잿빛이기도 하고 때로는 석양에 물들어 붉은색일 때도 있다. 실제 가을 하늘이 푸르다 해도 푸르게만 나타내면 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땅은 황토색, 나무는 고동색으로 인지하고 있다. 실제로 길을 걷다 보면 땅의 색깔도 여러 가지고 나무 역시 회색, 암갈색, 검은색을 띠기도 한다. 그럼에도 미리 머리에 색을 설정해 놓고 보니 다른 색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반입한 P화백의 그림을 가만히 보면 인물이 살아 있다. 피부색이 칙칙한데도 숨을 쉬고 있는 듯 꿈틀거린다. 거친 붓질 속에 노련한 필력이 느껴진다. 사진처럼 잘 다듬어진 그림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그동안 왜 그림은 곱게 그려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을까.

그림은 종이에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지만 나무나 천에 그리기도 하고 붓이 아니라 나이프나 맨손으로 표현 기법을 달리할 수도 있다. 또한 구체적인 형태가 없어도 색의 느낌만으로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 프랑스의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산책을 마치고 작업실에 돌아와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을 보고 반해 버렸다고 한다. 갇힌 사고의 틀이 깨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념의 틀에 안주하려 한다. 고정된 틀 안에 자기를 가두는 관념은 늘 신던 신발처럼 편안함을 느낄지는 모르나 다른 이에게 신선함을 주지는 못한다. 스스로 오랜 관념 속에 묶여 상상의 공간을 제한시키고 사유의 세계를 단절시킨다. 각도를 달리하면 같은 대상이라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자연이나 사물을 재해석하여 자기만의 구도, 자기만의 색을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가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기회가 있을 때는 사뭇 조심스럽다. 숲속의 풍경을 그리라 하였더니 나무들이 모두 누워 있다. 밤이 되어 나무가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비례나 형태가 맞지 않는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더 참신함을 느끼는 것은 관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순수성은 마치 솜과 같아 내가 가르친 대로 흡수한다. 아직 자기 안에 들어온 색들을 배합할 능력이 부족하기에 내가 빨강을 칠하면 빨간색을, 노랑을 칠하면 노란색을 칠하게 된다. 철부지인 그들에게 굳어버린 관념을 주입시키지는 않았는지 염려가 된다.

역발상은 다소 엉뚱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관념들을 반전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새로운 트렌드의 원천도 선보일 수 있기에 예술가들은 늘 틀을 뒤집을 생각에 골몰하는 것이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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