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경험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 지휘관을 떠맡게 되면 어떨까. 아마 죽을 맛일게다. 스페인 무적함대 사령관 알론소 페레스 데 구스만(1550~1619)이 딱 그런 경우다. 1559년 오늘 스페인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제7대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이 된 그는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의 민완 행정가였지만 군인은 아니었다. 그가 무적함대를 맡게 된 것은 전임 제독 산타 크루즈 후작이 장티푸스로 급서(急逝)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왕 펠리페 2세가 그의 행정능력을 높이 사 사령관에 임명했지만 그는 경험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다며 거절했으나 왕의 뜻을 굽히지 못했다.
함대를 맡은 뒤 영국 원정 준비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배의 속도도 느렸고 대포의 성능도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적선에 올라타 칼이나 총으로 적을 제압하는 전법(戰法)이 문제였다. 이런 전법으로는 신속하게 기동하며 스페인 대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포를 쏘아대는 영국해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 결과는 130척중 70척이 침몰하고 2만6천명의 병사중 1만2천명이 죽는 궤멸적 패배였다. 이후에도 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이미 무적함대의 신화는 사라졌고 스페인의 영광은 기울고 있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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