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2주 전쯤에는 배 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니라 어제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2년 전에 유산을 한 이후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생명이 배 속에서 사라진 상실감, 배 속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 자기가 아이의 생명을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임신을 하고 심한 입덧도 이겨냈다. 얼마 안 있어 자신이 낳을 새로운 생명을 가슴에 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신을 원하는데도 건강한 남녀 사이에 2년 이상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불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열 쌍 가운데 한 쌍의 비율이라고 한다. 옛적 일본에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여자를 '석녀'(石女)라고 하고, 버림을 받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다. 옛날 시골에서는 석녀가 있으면 마을에 대가 끊긴다거나, 석녀와 결혼하면 남자의 몸이 쇠약해진다고 했다. 석녀가 결혼식에 오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불임이 남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낙태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과 한국은 세계에서 낙태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기혼여성의 낙태율은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아는 언니는 배 속의 아이가 여자인 것을 알고 낙태를 했다.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생명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데 충격을 받았다. 출산 전에 성별을 감별할 수 없었다면, 그 아이는 틀림없이 세상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남성 우위 사상이 깊이 뿌리 박고 있다. 한국에서 '후남'(後男)이 '끝년'이 등의 이름을 가진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개명을 했다. 만약 내 이름이 '후남'이나 '끝년'이었다면, '나는 왜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는가' '나의 출생은 왜 환영받지 못했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자 아이를 낳음으로써 비로소 그 집의 며느리로 받아들여지는 사고방식이 한국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맏이에게 시집을 간 여성들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주위로부터 남아 출산에 대한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는 없어요?"라고 묻는 것은 금기이다. 질병이나 다른 사정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계속 받으면 그 부부는 얼마나 슬플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듯이 이러한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는 "왜 아이가 없어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의 발로일지 모르나, 일본인의 감각은 다르다. 이런 질문은 흙발로 남의 안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받는 심한 임신 스트레스를 오늘도 견뎌내고 있다.
지금은 아이를 낳는 것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불안한 시대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다양한 선택도 가능하다. 반드시 아이를 낳는 것만이 인생의 증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을 낳아 준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태어났을 때는 물론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잘 몰랐다. 부모님이나 주위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혼자 힘으로 커온 것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부여받은 생명과 사랑의 고마움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랑받았다는 증거이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고 남을 사랑할 줄 알게 될 때, 세상에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 것이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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