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할리우드의 한국 로케

"페이퍼타올이 요기잉네. 자뉘으을 장이니신, 백 회장니 미테이 이라고 이치. 요태카지 날 미앵한고야?"

김윤진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 나오는 한국어 대사다. 한국계 배우 다니엘 대 김(사진)과 한 외국인이 화장실에서 주고받는 대화다. 외국인이 갑자기 옆에 와서 한국말로 "화장지가 여기 있네. 자네의 장인이신 백회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지"라고 하자 다니엘 대 김이 "여태까지 날 미행한 거야?"라고 놀라며 묻는다.

이 대사는 인터넷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많은 패러디물을 양상하기도 했다.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에 한국어 대사가 나오는 것도 신기하지만 비장미 넘치는 대목에 터지는 엉터리 한국어의 부조화가 어처구니없었던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비쳐지는 한국의 모습이 왜곡됐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1993년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폴링 다운'은 한국인을 돈만 밝히는 수전노로 그려 재미 한국인들을 분노케 했고 '007 어너더 데이'(2002년)는 북한의 농촌을 태국식으로 묘사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근에는 '로스트'에서 한강대교가 개천에 놓은 낡은 다리로 묘사되고 있으며 경남 남해도 동남아 해변을, 어부는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쓰는 등 "왜곡된 모습에 가깝다"는 한 국회의원의 지적도 있었다.

사극이 나올 때마다 고증이 문제가 되듯이, 세트를 지어 낯선 나라를 묘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가서 찍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한국에 관광을 왔다가 우연히 조직 폭력배와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영화 '보이지 않는 도시'를 한국에서 촬영하고 케빈 베이컨도 신작 '마이 라이프 마이 시크릿'의 30~40%를 한국에서 촬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캐나다에서 발행된 한 화보집을 본 적이 있다. 화려한 컬러 사진과 지도를 곁들인 로케이션 헌팅 제안서다. 이 장소는 어떤 영화의 느낌이 나고, 카메라를 어디에 설치해 촬영하면 좋을 것이며, 숙박시설은 어떻고, 가까운 공항이 어디며 등등 영화 촬영을 위한 모든 정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도 이런 책자를 만들어 할리우드에 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포 선셋'의 감독 줄리 델피에게 안동의 고택들을 보여주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무대로 한 동양적인 로맨스를 제안한다거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데자뷰'의 감독 토니 스콧에게는 대구 중앙로에 북한 스파이와 추격전을, 재난 영화의 대가 롤랜드 에머리히에게는 팔공산 갓바위에서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할리우드 영화는 색다른 촬영 장소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좋은 장소는 대부분 써 먹었기 때문이다. 혹시 아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대규모 촬영팀을 인솔해서 대구를 찾을지.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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