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임기는 1952년 7월 23일에 끝나게 되어 있었다. 1952년, 전선은 38선에서 소모적인 고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년 여름부터 판문점에서는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이 지루하게 휴전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공산군을 콜레라균에 비교하면서 "인간은 호열자와 타협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1951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개헌안은 찬성19, 반대 143, 기권 1로 부결되었다. 야당 연합세력은 4월 17일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서명한 의원이 개헌 정족수인 123명이나 되었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에서 재선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국익 차원에서 판단할 때 총리인 장면의 당선이 가장 바람직스러웠다. 그래서 무초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은 장면 총리의 선거대책본부로 착각할 만큼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장면 총리를 해임하고, 후임으로 장택상을 임명했으며, 또한 내무장관에 이범석, 국방장관에 신태영을 임명했다. 그리고 5월 14일 직선제 개헌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는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전화로 신태영 국방장관을 찾다가 없자 이용문 작전국장과 통화를 하였다. 이용문은 "제가 작전국장으로 있는 한 절대로 파병은 못 합니다. 전쟁 중인데 병력을 빼내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적행위"라고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5월 25일 부산'경남'전남북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계엄사령관에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5월 26일 아침, 계엄군은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던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버스가 검문에 불응한다며 헌병대로 끌고 갔다. 끌려간 국회의원 가운데 서범석 의원 등 5명은 구속되었고, 6월 2일에는 곽상훈 의원 등 6명이 또다시 구속되었다. 이들 11명은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던 핵심 세력이었다.
대구의 육군본부에서 열린 참모회의는 격앙되어 있었다. 이종찬 참모총장은 "군이 정치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참모들은 따로 회의를 가진 뒤 '군은 동요하지 말고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만 다하라'는 요지의 훈령을 만들어 참모총장 명의로 각 부대 지휘관에게 시달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략) 현하(現下)와 같은 정치 변동기에 승(乘)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사(政事)에 관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건군 역사상 불식할 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누란(累卵)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니, 제군은 국가의 운명을 쌍견(雙肩)에 지고 조국 수호의 본연의 사명에 염념명심(念念銘心)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 헌신하여 주기 바란다(하략).'
이른바 '육군 장병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훈령은 박정희 차장이 기초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했다. 이 같은 육본의 움직임에 크게 노한 이승만 대통령은 이종찬 참모총장을 부산으로 소환했다. 이때 정보국장 김종평 장군과 헌병사령관 심언봉 장군이 수행했는데, 다들 체포될 각오를 하고 떠났다. 그러나 미8군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의 비호로 위난을 면했다.
군 내부에서는 계엄군 파병 여부를 두고 신중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파병하지 않기로 결론지었다. 증언에 따르면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박정희 대령이었다. 하지만 의제만 상정해 놓고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을 취했으며, 사실 대령으로서는 회의를 주도할 위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중대한 회의를 박정희 대령이 단독으로 소집했을 리 없고, 아마도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 회의에 이종찬 참모총장과 이용문 작전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실각시킬 목적의 군대 동원에 대해서는 이종찬'이용문'박정희 세 사람이 핵심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회의 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이종찬 총장은 "박정희, 그 사람 인물이야" 하며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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