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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대장금과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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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대장금'이다. 해외에서 한류의 불꽃을 거세게 피워올린 대장금은 그래서 한류의 대명사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대장금을 위시한 한류가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면서 최근 이웃나라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열풍을 저지하기 위한 법안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대만에 한류가 상륙한 것도 대장금이 전파를 타면서 비롯됐다. 대장금이 홍콩의 안방을 장악했을 때는 현지 언론이 '장금 정신' '장금 철학'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고 한다. 대장금이야말로 수많은 내우외환을 이겨내고 자강(自强)을 이뤄낸 한국 역사의 반영임에 주목한 것이다.

중국의 어느 학자는 "대장금을 보면 유교 전통문화의 정수(精髓)가 진열된 박물관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대장금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의 국제적인 성공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조선의 역사와 정신문화 가치가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얻었다는 측면을 주목해 본다. 유교의 냄새를 드러내놓고 풍기지 않으면서도 유교의 이상을 잘 그려낸 것이 대장금의 매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대장금의 시대적 배경은 16세기이다. 당시의 조선은 사화(士禍)의 시대로 정치적인 혼란이 극심했지만, 유교(성리학)의 정신이 활짝 꽃피던 시대이기도 했다.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 조선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 활약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대장금의 현장은 훈구 척신 세력과 신진 사림 세력이 각축을 벌이던 정치판은 아니다. 그러나 수라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최 상궁-금영 계열과 한 상궁-장금 계열의 대립 구도는 훈구와 사림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상궁이 죽은 후 온갖 역경을 헤치고 장금이 승리를 이뤄내는 과정은 조광조가 쓰러진 후 후배 사림들이 훈구파의 시대를 극복하는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조광조가 깃발을 든 조선 성리학의 정신은 퇴계가 철학으로 완성했다. 퇴계의 고장 안동에서 바라보는 대장금과 한류의 성공은 그래서 감흥이 남다르다. 대장금은 그동안 우리가 맞갖잖게 여겨왔던 유교의 철학과 조선의 정신문화가 모태이기 때문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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