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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전국 도매상 몰리던 대신동 양말골목, 오늘날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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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대신동
대구 중구 대신동 '양말골목'입구에 설치된 입간판 사이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양말 가게 자리를 카페와 채소 가게가 채우면서 골목의 정체성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신동에서 남산동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좁은 길목이다. 무심코 지나치려는 순간, 발길을 붙잡는 건 작고 알록달록한 색동 양말이다. 양말을 매대에 가득 펼쳐놓은 가게들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즉석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 양말부터 전국 각지로 유통될 양말 묶음이 골목 곳곳에 쌓여 있다. 오로지 양말만을 파는 독특한 거리. 대구 양말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봤다.

◆ 최대 100곳… 양말가게 전성기

골목의 역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제일모직 등 유명한 섬유·직물 업체들이 북구 일대에 자리 잡았던 시기다. 대신동은 양말 재료를 빠르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고, 대구·경북 상권의 중심인 서문시장과도 가까웠다. 양말 장사에 최적의 입지를 갖춘 셈이었다.

그렇게 양말골목은 빠르게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이 작은 골목에만 100여 개 업체가 모여 있었다. 전국으로 유통되는 양말 상당수가 이곳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값싸게 양말을 대량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골목은 자연스럽게 손님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손님은 일반 소비자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국 전통시장과 마트, 문구점 상인들이 양말을 떼가기 위해 골목을 찾았다. 아예 숙소를 잡고 이틀 동안 물건을 고르는 도매업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동 양말골목이 썰렁한 모습이다. 섬유산업 쇠퇴와 대형 공장 폐업, 도시철도 3호선 개통 이후 유동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골목의 활기는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신동 양말골목이 썰렁한 모습이다. 섬유산업 쇠퇴와 대형 공장 폐업, 도시철도 3호선 개통 이후 유동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골목의 활기는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전성기 지나 조용해진 골목

지난 12일 찾은 대신동 양말골목은 다소 한산했다. 평일인데도 휴일처럼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때 100곳이 넘었던 양말 가게 가운데 지금 남은 곳은 15곳 남짓. 이날 문을 연 곳은 10곳에 불과했다.

양말 가게 대신 카페나 채소 가게가 들어서면서 골목의 정체성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특히 남산동 방향에 있던 30개가 넘는 점포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매일 양말을 신는다. 그런데 왜 양말골목을 찾는 이들은 줄었을까. 섬유산업의 쇠퇴는 골목에 직격탄이 됐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대형 양말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산업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 공장에서 기술을 익힌 이들이 소규모 공장을 차려 사업을 이어가는 형태로 변했다.

수출 시장 축소도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는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 단가 덕분에 해외 주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 자연스럽게 양말 골목의 주 고객도 해외가 아닌 내수 시장이 됐다.

교통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 개통 이후 유동 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예전에는 역에서 내려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양말골목을 지나갔지만, 이제는 골목을 거치지 않아도 이동이 가능해졌다. 통행량 감소는 곧 소매 손님 감소로 이어졌다.

1988년부터 양말골목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62) 씨는 "전성기와 비교하면 매출이 3분의 1 수준이다"며 "여름에는 덧신조차 신지 않고 샌들을 신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장사가 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골목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여름용 덧신을 가게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말을 이었다. 김씨는 "그래도 먹고살 만큼은 수익이 난다"며 "30년 넘게 지켜온 가게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자리를 지켜나갈 생각이다"고 했다.

등산용 양말, 무지 양말, 레이스 패션 양말, 발가락 양말, 통풍 기능성 양말까지 온갖 종류의 양말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등산용 양말, 무지 양말, 레이스 패션 양말, 발가락 양말, 통풍 기능성 양말까지 온갖 종류의 양말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골라보는 재미 남은 오늘날

쇠퇴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골목에는 여전히 다양한 양말이 빼곡했다. 원하는 디자인이 없다면, 대량으로 제작을 의뢰할 수도 있다는 안내판이 방문객을 반겼다. 골목을 지나가는 이들은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온갖 종류의 양말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

등산용 양말부터 무지 양말, 형형색색의 패션 양말, 레이스가 달린 패션 양말이 판매대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통풍 기능이 강조된 제품, 발가락 양말, 면 양말 등 기능성을 강조한 양말도 손쉽게 볼 수 있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질감과 디자인을 비교하며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직접 양말을 집어 들고 만져보니 품질 차이도 확연했다. 시장 한편에 무더기로 쌓인 저가 양말과는 촉감부터 달랐다. 맨들한 면 소재는 땀 흡수도 잘될 것 같아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됐다.

한 상인은 "흔히 판매되는 중국산 제품보다 질은 더 좋은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고 자랑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면 양말 10켤레 가격은 1만원 수준. 인근 서문시장보다도 50% 이상 저렴한 편이다.

골목은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양말골목의 하루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싼값에 양말을 고르고, 상인들은 전국으로 보낼 물건을 분주히 포장한다. 양말 한 켤레를 살 겸 가볍게 한 번 걸어보며, 양말 골목의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곱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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