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대게 철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대게의 살도 튼실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유난히 추위가 맹위를 떨친 올해는 대게의 맛도 최고다. 대구경북 사람들의 입은 행복하다. 겨울 식도락의 최고인 대게의 본고장이 가깝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호랑이 등을 타고 흐르는 7번 국도 변이 대게의 본고장이다. 대게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영덕 대게와 울진 대게, 대게의 최대 어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구룡포까지 모두 우리의 터전이다.
겨울바다 냄새가 그리웠다. 이른 새벽에 다다른 구룡포 포구. "끼룩~끼룩~." 갈매기들이 반긴다. 청량한 바다 냄새는 언제라도 좋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칼같은 바닷바람은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겨울바다를 여행하다 보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한창 전성기를 맞은 대게의 맛을 즐기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국 최대 대게 생산지 구룡포항
구룡포를 비롯하여 영덕, 울진 등 경북지역이 전국 대게 어획량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포항 구룡포항은 전국에서 대게잡이 배들이 가장 많이 출어하는 곳이다. 경북지역 대게 어획량의 57%를 점유하는 등 전국 최대 대게 생산지다. 그럼에도 영덕이나 울진의 대게 명성에 가려져 있다. 구룡포는 '대게'보다는 과메기와 오징어 항구로 더 유명하다. 포항시는 최근 구룡포 대게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룡포항 대게잡이 배는 150여 척의 자망 어선이다. 일본 오키군도 주변 수심 300~400m 심해에서 잡은 구룡포 대게는 속이 꽉 차있고 살이 담백하고 쫄깃해 요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구룡포 어판장에는 거의 매일 오전 내내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신선하고 속이 꽉 찬 대게를 먼저 차지하려는 상인들의 발길로 북새통을 이룬다.
구룡포항의 지난해 대게 위판 규모는 개인 판매를 합해 1천279t(246억원)이다. 최근 들어 구룡포가 전국 최대의 대게 집산지로 서서히 소문나고 있다. 이로 인해 요즘 구룡포 항구에는 속살이 가득 찬 맛있는 대게를 맛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대게
'대게'(Chionoecetes opilio)는 '큰 게'라는 뜻이 아니다. 발 모양이 마치 대나무의 마디와 같이 이어져 있다고 해서 '대게'란 이름을 붙였다. 대게는 한국에서 나는 게 중 가장 다리가 길고 몸통이 커서 맛이 좋다. 게는 한류성으로 30~1천800m 깊이의 진흙 또는 모랫바닥에서 산다.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크며 한국'일본'캄차카반도'알래스카'그린란드 등지에 산다.
▶효능=대게는 단백질 함량이 많고 리신, 로이신, 메티오닌 등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맛이 담백하고 소화가 잘 된다. 특히 게 껍질 속에 포함된 키토산 성분은 유방암 등 각종 질병치료에 탁월해 건강식으로 최고다.
▶생태=암컷과 수컷의 서식처가 각각 분리되어 있다. 어린 게나 암컷은 수심 200~300m의 대륙 경사면에 산다. 수컷은 300m 이상의 수심에서 산다. 주요 먹이는 게'새우'어류'오징어'문어'갯지렁이 등 잡식성이다.
▶잡는 방법=주로 통발이나 자망, 트롤(저인망) 그물로 잡는다. 통발 포획은 통발 속에 대게가 좋아하는 다랑어를 넣고 추를 달아 바다 밑에 넣으면 대게가 먹이를 찾아 통발 속에 들어간다. 자망은 바다 밑에 그물을 늘어뜨린 후 대게를 그물에 걸리게 하여 7~20일 후 그물을 걷어올려 잡는 방법이다. 트롤은 바다 밑에 그물을 던진 뒤, 저인망식으로 그물을 끌어당기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부터 4월까지가 대게잡이 철이다.
◆대게 3파전
▶대게 수요량 최고 영덕='영덕대게'는 대게를 일컫는 고유명사처럼 돼 있다. 강구항에 들어서니 대형 대게식당이 위용을 자랑한다. 집집마다 대게 삶는 냄새가 진동한다. 대게 중 덩치가 크고 유독 살이 꽉 찬 '박달대게'는 영덕대게 명품임을 인증하는 녹색의 '팔찌'가 채워졌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강구항 주변 식당에서 파는 대게들은 대부분 9t 이상의 큰 배들이 일본과의 경계수역 어름까지 가서 잡은 것이다. 물론 러시아산(요즘은 일본산으로 표기)도 있다.
강구항 맞은편 선착장 주변에 어시장이 형성돼 있다. 속칭 '갓빠리'라고 부른다. 어시장 부회장 윤광수(36) 씨는 "본격적인 대게 철인데 구제역 여파로 손님들이 거의 없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소연이다. 맞은편 오공수산 조미수(33) 씨도 "예년에는 이맘때쯤이면 평일에도 대게를 찾는 손님들이 북적거리는데 올해는 정말 한산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대게를 사서 강구항 주변 '찜집'에서 먹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영덕에는 수려한 풍광과 독특한 역사를 자랑하는 어촌마을이 있다. 영덕대게의 원조마을로 알려진 축산면 경영 2리 '차유마을'이다. 최근 국토해양부로부터 '아름다운 어촌'에 선정된 명소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 내세운 울진=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울진 입구에 들어서면 '대게의 본고장 울진에 잘 오셨습니다'란 간판이 서 있다. 울진의 자랑은 요즘도 왕돌초까지 출어해 대게를 잡는다는 것이다. 연안에서 왕돌초까지는 9t 미만의 어선만 출어할 수 있다. 그 이상은 왕돌초 너머 일본과의 경계수역 사이에서 대게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영덕 강구항이나 포항 구룡포항에서 소형 어선들이 적지 않은 기름값을 내고 왕돌초까지 가기엔 거리가 다소 멀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울진 '후포배'들이 왕돌초에 많이 몰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물론 후포항 외에 죽변항 등 울진의 대표적인 대게잡이 항구들에서도 30t이 넘는 큰 배들이 원양까지 나가 대게를 잡기도 한다. 결국 '임금님께 진상된 대게가 왕돌초 지역에서 잡히는 것이니 만큼, 당연히 울진이 대게의 원조'라는 게 울진 측의 주장이다. 대게잡이 배들이 많은 후포항 왕돌초 광장과 한마음 광장, 죽변항 등에 대게 식당들이 즐비하다.
▶구룡포항 가는 길=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경주IC로 나와 7번 국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길도 있다.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포항 시내로 들어와 형산강변을 끼고 포스코를 지나 31번 국도를 타고 20여 분쯤 달리면 구룡포와 감포로 갈라지는 병포삼거리가 나온다. 병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구룡포 읍내와 포구가 눈앞이다.
▶주변 관광지=구룡포의 해안도로 뒤쪽 골목길에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 1930년대 일본인의 옛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일본식 적산가옥(敵産家屋) 30동이 볼거리다. 400여m에 걸쳐 줄지어 선 적산가옥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으로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마치 영화촬영장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요즘은 일본인들의 방문이 잦다.
적산가옥촌 사이에 분홍색으로 둘러싼 7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당시 일본인이 만든 구룡포공원이 나온다. 공원에서 내려다보면 구룡포항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 안에는 충혼탑이 있다. 충혼탑 입구 오른편을 유심히 보면 우리나라 비석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룡포항에 살았던 일본인이 세웠던 기념비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앞뒤로 모두 시멘트 칠을 해 지금은 알아볼 수 없다.
◆구룡포의 소문난 먹을거리
▶고래고기=고래고기는 쉽게 맛볼 수 없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밍크고래 고기는 열 가지의 고래고기맛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구룡포에서는 '모모식당'이 고래고기 전문점으로 유명하다. 054)
276-2727.
▶모리국수= 매서운 추위 속에 힘든 작업을 마친 뱃사람들이 '얼큰하고 화끈한 맛'에다 막걸리를 곁들여 언 몸을 녹이며 즐겨 먹었던 구룡포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이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갓 잡은 생선과 해산물,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 양념장, 국수 등을 듬뿍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모리국수란 이름은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을 '모디'(모아의 사투리)넣고 여럿이 모여 냄비째로 먹는다고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모리국수'로 정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음식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포항말로 "나도 모린다"고 표현한 것이 '모리국수'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집성촌이던 구룡포지역 특성으로 '많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모리'에다 푸짐한 양 때문에 모리국수로 불리게 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모리국수 식당도 쇠락해 이제는 까꾸네 모리국수 등 2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까꾸네 모리국수 054)276-2298.
▶철규분식=50년 전통의 구룡포 명물이다. 옛맛을 그대로 살린 국수와 찐빵을 맛볼 수 있다. 구룡포초등학교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냄비국수는 멸치를 잘 우려낸 맛국물에 기본적인 채소만 간단하게 올린다. 조미료와 같은 잡스러운 맛이 없어 국수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미는 찐빵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맛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찐빵을 단팥죽에 찍어 먹는 맛은 독특하다. 찐빵(3개) 1천원, 국수(1인분) 2천원, 단팥죽(1인분) 2천원이다. 054)276-3215.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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