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이제 무섭지 않습니다.'
대구 지역 일부 전통시장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내세워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시설 현대화는 기본이고 대형마트나 SSM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주민 밀착형 마케팅을 앞세워 고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100원만 주고 가져가이소, 흥이 있는 시장
'통큰 할인'은 대형마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채소류에 강점을 보이는 팔달신시장은 매월 1일과 설, 추석 명절에 파, 배추, 시금치, 양파, 양배추 등 야채들을 단돈 '100원'에 특가 판매한다. 이 '100원 숍'을 위해 국비로 지원받은 1천만원에 상인들이 200만원을 보탰다. 특가 판매가 열리는 날엔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서남신시장도 3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금요일 시장경영진흥원에서 공동 구매한 상품을 원가 이하로 판매하고 있다. 생닭, 멸치, 라면, 참치통조림 등 취급 품목도 다양하다.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입간판도 세웠다. 배추상점 옆에는 커다란 배추 간판을, 부추상점이나 깻잎상점 앞에는 부추나 깻잎 모양의 입간판을 세우는 식이다.
팔달신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전통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보다 쉽게 원하는 상품을 살 수 있도록 유사한 상품을 파는 가게가 밀집한 5곳에 제품 모양을 간판에 집어넣었다"며 "눈에 확 띄면서 디자인도 예뻐 반응이 좋다"고 했다.
다양한 문화 행사도 전통시장 경쟁력 강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서남신시장은 주민과 상인들이 어우러지는 씨름대회와 다문화가정 주부들을 위한 요리강습, 요리 경연대회를 연중 열고 있다. 또 상인들이 협찬한 상품을 경매로 싸게 판매한 뒤 판매금 전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한다. 포인트카드를 발행해 물건을 사지 않고 시장을 방문하기만 해도 포인트가 쌓이도록 했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중구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은 문화가 접목된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방천시장 내에 17개 점포, 30여 명의 상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문전성시 사업은 낡고 어두웠던 시장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젊은층과 전국의 작가들이 잇따라 찾으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올해는 가수 고(故) 김광석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시장 내에 김광석의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제목의 벽화거리를 조성하고 김광석 영화음악회, 추모제 등이 열리게 된다. 동구 불로전통시장은 올 5월부터 신명나는 놀이마당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시장 중앙에 240㎡ 규모의 야외 공연장이 만들어지고 장터 곳곳이 무대로 변신한다. 공연장에서는 전통 명인들과 대구 예술단체의 무대가 펼쳐지고 시장 거리에는 장터 피에로와 비보이 공연, 페이스 페인팅 등 예술 난장이 펼쳐진다.
◆현대화 시설 이미지를 입히다
13일 오전 찾은 대구 달서구 서남신시장. "오늘 물이 좋네, 생선 한번 보고 가이소." 생선가게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처럼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 안은 활기가 넘쳤다. 시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온 젊은 30대 며느리는 묵묵히 뒤를 따르며 지갑을 꺼내기 바빴다.
서남신시장은 시설 현대화와 서비스 개선으로 시장 활성화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과거 족발과 만두, 반찬 등 먹을거리로 유명했다. 기존의 명성을 바탕으로 고객지원센터 등 편의시설 확대와 달라진 서비스, 깨끗하고 편리해진 쇼핑 환경이 더해 활로를 찾았다. 현금 입출금기와 어린이 놀이방, 수유방 등을 갖췄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과 카트도 있다.
홍순학 서남신시장 운영위원장은 "13년째 식자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대화가 시작된 2009년부터 해마다 매출이 2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현대화 이후 시장을 찾는 고객 연령층도 눈에 띄게 젊어졌다.
김지원(31·달서구 이곡동) 씨는 "주로 반찬거리를 사러오는데 싸고 신선해서 좋다"며 "어린이놀이방 등 편의시설이 생기면서 더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문시장도 젊은 여성층 고객이 늘고 있다.
다양한 액세서리와 의류부자재, 옷 수선, 여성복, 아동복 등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는 상품이 많은데다 대형 커피전문점과 와플, 토스트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먹을거리 상점도 잇따라 생겨난 덕분이다. 여성휴게실과 놀이방, 수유실 등 여성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적잖다.
김영오 서문시장상가연합회장은 "상인도 30, 40대로 젊어지고 2세 상인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 활력이 돌고 있다"며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오후 9시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살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 채워야
전통시장의 차별화·특성화는 기존의 전통시장 정책이 보여줬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꼽힌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장의 외관만을 뜯어고치는 것만으로는 대형마트나 SSM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판매 상품을 특화하거나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해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
경북대 장흥섭 교수는 "유명한 상품이나 맛있는 먹을거리 등 '핵 점포'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늘고 다른 상품 매출도 증가한다"며 "시설 편의는 개선하되, 전통시장의 맛이 살아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담아야 떠나간 시민들을 돌려세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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