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하지만 이번 대보름달은 국민들 가슴에 엉킨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고 희망을 안겨줄 것 같지가 않다. 구제역으로 전국이 3개월째 고통과 시름에 잠겨있고 강원과 경북 동해안 일부 지역은 폭설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국책사업을 두고도 전국이 갈기갈기 찢겼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충청과 영남, 호남권이 한 치의 양보없이 다투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해 공약했다"고 밝히면서 충청권은 마치 화약고 같다. 동남권 신국제공항(이하 신공항)도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등 4개 시'도와 부산이 밀양과 가덕도를 두고 '동상이몽'을 하는 형국이다. 영남권 내부에서 '전쟁터' 같은 대치상을 보이자 대통령과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최근 지역간 격심한 갈등이 일고 있는 국책사업에 대해 국무총리실이 주관하고 갈등을 관리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공항 건설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영남권 공약으로 채택했다. 당초 2009년 입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가 3차례나 연기됐다. 대선공약이자 영남권이 난리인데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신공항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청와대에 근무한 전'현직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신공항에 대해 정확한 보고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전하고 있다. 대통령이 신공항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겠지만 신공항이 또 하나의 '지방공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급은 커녕 오히려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1천300만 영남권 주민을 포함한 2천만 남부권 주민들이 요구하는 신공항은 적자투성이인데다 효용성이 낮은 지방공항을 흡수하는 '관문공항' 이다. 쉽게 말해 신공항은 과거 김포 국제공항처럼 중형 공항(1.5공항) 규모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걱정하는 경제성의 경우 어느 기관에서 조사하더라도 신공항은 2030년이면 국내 항공수요만 1천2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연 7~8%씩 성장하는 외국인 수요를 더할 경우 앞으로 20년 뒤면 항공수요가 1천500만 명을 훌쩍 넘기는 것은 물론 2천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10년 전 인천공항이 엄청난 우려 속에 개항했지만 여객 및 화물수요가 예측치 이상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으로 성장한 데서 보듯 10년, 20년 뒤를 보고 신공항 건설을 판단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연말 2020년까지 90조원을 들여 전국을 KTX 고속열차로 거미줄망같이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문가들과 국민들은 우리나라같이 도로여건이 좋은 상황에서 고속열차는 경부축과 호남축이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이 재원의 10%만 들이면 남부권 8개 광역 지자체와 2천만 주민의 염원인 신공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부산측 행보도 우려스럽다. 진정으로 신공항을 바란다면 정부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경남 등 다른 4개 시'도는 "정부가 가덕도를 신공항 입지로 결정하더라도 승복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혹여 밀양에 신공항이 건설되는 것보다는 신공항 입지결정을 무산시키려거나 차선으로 김해공항 존치와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살 수 있다.
밀양에 신공항이 건설되더라도 부산 시민들이 이용하는 데는 그다지 불편이 없다. 해운대와 서면 사상지역 등 부산 서'북부권은 가덕도보다 밀양이 훨씬 가깝다. 그야말로 밀양 신공항은 부산공항인 것이다.
또다른 의구심도 있다. 경남지역 항공 및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가덕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부산시의 가덕도 활용 방안 등에 주목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을 통해 주변 항만과 공단을 활용하는 동시에 마지막 남은 가덕도를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가덕도에 신공항이 들어설 경우 그야말로 영남권 전체가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이 아닌 부산만의 공항이 된다. 부산은 초심으로 돌아가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영남권이 상생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춘수(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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