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지 문제가 한국정치의 일대 화두로 떠올랐다. 진보진영이 군불을 지핀 무상급식론은 급기야는 보편적 복지 대 선택적 복지 논쟁으로 확전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가 백가쟁명의 설전을 벌이며 대립전선을 형성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했건만 이 경우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근래에 서민 행복을 둘러싸고 이렇게 치열한 논변을 벌여본 적이 있었는가. 적당히 흥정하지 말고 정책대결을 더욱 심화하여 복지 백년지대계를 확립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복지정책이 선거에서 유권자 선택의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 망국적 지역주의와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야만적 혐오증이 선거에 발붙일 틈이 좁아질 테니까. 그런데 복지논쟁에 빨갱이 딱지에 버금가는 신종'포퓰리즘(populism) 색깔론'이 준동하고 있으니 심히 유감이다.
전문 용어가 대중의 언어로 소통될 때 왕왕 본 뜻이 탈색 혹은 각색되곤 한다. 포퓰리즘이 그런 경우다. 이 용어는 흔히 인기영합주의로 이해된다.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현실을 가공하는 처세술이라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의미는 퇴행적이다. 파격적인 복지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산시킨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과 그의 아내 에비타는 가장 유명한 포퓰리즘의 대명사이다. 반면 포퓰리즘은 풀뿌리주의라는 보다 근원적인 속뜻을 가지고 있다. 소수 엘리트들의 정치사회적 기득권에 맞서 민초들의 이해와 권리를 실현하는 사조라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의미는 건강하다. 전제 폭정과 식민 지배에 항거한 제정 러시아의 브나로드(대중속으로) 운동은 지난 세기 민초들을 일대 개명시킨 풀뿌리주의의 소산이었다.
요컨대 포퓰리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둘 중 어떤 포퓰리즘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론은 일군의 예비 대선후보들로부터 발단되었다. 먼저 포문을 연 오세훈 서울시장은 망국적 무상쓰나미라는 비난과 함께 시의회와의 정책 협의를 단절했다. 게다가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고개 돌리는 주민투표 실시까지 들고 나왔으니 외통수를 자초한 형세다. 이에 질세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복지 포퓰리즘은 공산주의보다 위험하다고 대못을 박아버렸다. 이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이다. 그러니 영합주의자들과 머리 맞대고 논쟁하기보다는 색깔을 덧씌워 그 여지를 없애버리는 편이 수지맞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행태야말로 고도의 인기영합술이다. 복지 이슈를 야당과 박근혜 의원에게 선점 당했으니 특효 처방이 필요했을 법하다. 그리고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거나 대선 출마를 위해 단체장직을 접을 명분으로도 이만한 호재가 없어 보인다. 덕분에 재원과 인프라 충당 그리고 조세와 경제구조 개혁 등 복지정책 대결의 각론은 사그라졌다. 복지논쟁의 광장에 발을 들여놓은 위정자들에게 당부한다. 부디 인기영합주의를 버리고 풀뿌리주의 정신으로 논쟁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건강한 포퓰리즘이니까.
장우영(대구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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