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줌마라뇨… 우리가 바로 여당당 당원들"

전업주부들의 풀뿌리 지역 공동체 '수성주민광장'

전업주부들이 주축이 된 수성주민광장은 각종 소모임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성장해 나가는 풀뿌리 지역 공동체다. 사진은 지난달 개국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이끌어 나가는 회원들.
전업주부들이 주축이 된 수성주민광장은 각종 소모임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성장해 나가는 풀뿌리 지역 공동체다. 사진은 지난달 개국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이끌어 나가는 회원들.

"어릴 적 수학을 조금 잘한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기계화된 틀에 맞춰 사는 게 어려웠어요. 적응을 잘 못해 결혼을 했죠. 하지만 살림도 제대로 못하고 애도 잘 키우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 자책만 했어요. 그런데 이 모임에 와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제가 엉뚱한 기질이 있거든요.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가'가 나의 길인 것 같아요. 웹 디자인, 일러스트 과정을 배우고 있어요. 나의 꿈을 알기까지 좀 많이 돌아왔죠?"

13일 오전 11시 30분, 수성주민광장에서 동화 읽는 모임 '햇살'이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다. 차정옥 작가의 동화책 '이모의 꿈꾸는 집'을 주제로 한 이번 모임에서 40대 한 회원이 이처럼 고백했다.

그러자 차 작가는 그 회원에게 여성 만화가 천계영과 미우치 스즈에의 사례를 들려줬다. "미우치 스즈에는 마흔 다 돼서 모든 일을 접고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만화작가 천계영 씨는 공부를 너무 잘해서 이화여대 법대를 갔죠. 하지만 다 적응하지 못해 만화가의 길로 갔고,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 대한민국 전업주부는 그저 '아줌마'로 불린다. 그 누구도 아줌마에게 다른 이름을 부여해주지 않는다. 풀뿌리 지역 공동체 수성주민광장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회원들은 '누구의 엄마' 대신 각자의 이름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업주부들이 중심이 돼 주민자치와 복지, 청소년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수성주민광장에는 동화읽는 모임 '햇살', 글쓰기 모임 '예측불허', 낭독봉사단 '울림', 노래봉사단 '어울림', 인터넷 방송국 등의 소모임이 있다. 한 명이라도 원하는 회원이 있으면 일단 소모임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모임은 회원들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특히 지난달 개국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은 회원들의 힘으로 꾸려나가는 대표적인 소모임이다. 처음에 낭독봉사단의 녹음실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시작됐고, 2008년 성서공동체 라디오의 한 코너를 맡게 됐다. '우리가 직접 우리 방송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회원들이 힘을 모아 지난달 15일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을 개국한 것.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를 모토로 개국한 지역밀착형 인터넷 방송인 수성주민광장(www.scos.or.kr)에는 교육 문제를 다루는 '마담투의 교육난타'를 비롯해 '미자와 정자의 수다', '소리로 읽는 동화', '올드 보이즈', '라디오 책방' 등의 코너가 운영된다.

사실 전업주부인 회원들이 준비하다 보니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장소와 비용.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낭독봉사회 회원들이 책을 낭독해 시디를 제작했고, 그것을 판매해 200여만원의 수익금을 만들었다. 방송실 내의 흡음판은 회원들이 계란판으로 직접 제작하고 천으로 방을 꾸미니 그럴 듯한 방송국이 갖춰졌다. 그곳에서 5명의 피디(PD)가 40여 명의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20여 개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피디(PD)와 진행자, 대본 작가 등으로 일인 다역을 하고 있는 최인경(41·수성구 범어동) 씨는 방송 진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넓어졌다. "게스트를 모셔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문도, 책도 많이 읽어야 해요." 게스트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최 씨는 '공감하는 방송'을 으뜸으로 친다. 처음에는 가족, 사랑, 아이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사회 전반을 다룰 만큼 내공이 깊어졌다.

수성주민광장은 이 밖에도 어린이날 행사, 청소년 인문학강좌, 천을산 가꾸기 운동, 마을 축제, 문화 답사 등 지역 밀착형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6월쯤엔 청소년 문화공간을 개관해 지역에서 교육을 고민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쉼터 역할을 할 계획이다. 수성주민광장 이영희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전업주부들뿐만 아니라 직장 여성들, 남성들까지 활동할 수 있는 소모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욕구를 동네에서 만나 같이 수다를 떨며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성주민광장 카페(http://cafe.naver.com/scos), 문의 053)744-347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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