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전세대란 해결, 지자체가 나서야

전국의 전셋값이 24개월째 상승하고 있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돼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국지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전국적인 현상이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대도시, 지방중소도시에서도 큰 차이가 없이 상승하고 있으며 주택 유형이나 평형별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세의 월세화나 반전세화도 심각한 문제다. 강제저축의 성격을 지니는 전세값 상승보다 강제지출의 성격을 지니는 월세의 증액은 가계 경제를 피폐하게 한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수백만의 전세 유민들이 가까운 직장과 자녀의 학교를 떠나 외곽으로 인근 도시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대란에 대한 정부의 문제 인식은 안일할 뿐이다.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지난 2년간 계절적인 이사 수요가 몰린 탓이라거나 국지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해 왔던 정부였다. 뒤늦게 대책을 발표하면서도 전셋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 가격 안정 때문에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집값이 올라 매수세가 살아나면 전세 수요가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전셋값 잡자고 주택 거래가 되살아나고 집값을 올려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잘못된 문제 진단에서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안 도와주는 것보다야 낫지만 오른 전셋값을 빚내서 해결하라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민간임대사업자를 육성해서 전세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다. 전세금을 받아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민간임대사업자는 월세로 임대하고자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집값을 올려 매각 차익을 얻으려 할 것인데 어떻게 전셋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더욱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재정적자가 심각한 정부나 부채가 누적된 LH공사 사정을 생각해 보면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한심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면 지방자치단체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전세 대책을 마련하려고 해도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호가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국민은행이나 민간 부동산 정보회사의 표본 자료를 통해서는 전세시장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임대차 계약 현황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임대차등록부에 기재하고 공시해야 한다. 그래야 세입자의 권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지자체와 정부가 이 정보를 통해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지자체마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에서는 2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한 해 5%까지 인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도 처벌하지는 않는다. 사소한 임대차 분쟁 때문에 법원까지 갈 수도 없기 때문에 세입자는 항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가 변호사나 공인중개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임대차 관련 분쟁을 자문하고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울러 지자체는 지역별로 공정한 임대료(fair rent)를 공시해 부당한 임대차 계약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자체별로 저렴한 소형주택이나 임대주택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자체들이 기존의 저렴한 주택을 멸실하여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고급주택으로 바꾸는 재정비사업에는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공공임대주택의 건설에는 잘 협조하지 않으려 한다. 조례를 통해 정부가 폐지해 버린 재정비사업의 소형주택 의무비율과 임대주택 의무건설제를 부활해야 한다. 다가구'다세대주택을 매입하거나 임대하여 장기전세주택을 직접 공급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대책이다.

지자체가 장기 거주나 낮은 임대료 책정에 대해 협약을 체결한 가옥주나 민간 임대 사업자에게 지방세를 감면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계약임대주택제도는 재원 부족으로 대규모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아주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다. 전세제도는 고액의 보증금 인상과 보증금의 안전한 반환 문제만 해결된다면 세입자에게 절대로 유리한 제도이다. 지자체는 이사 날짜의 불일치로 인한 전세입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전세보증금의 안전한 반환을 돕기 위해 금융기관과 지방공사가 참여하는 전세금 보증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 지자체는 가옥주가 파산하면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수수료로 전세금의 반환을 보증해줄 수 있다.

전세대란, 정부의 막연한 대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지역 내의 주거 약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뿐이다. 지역 내에 고급주택을 건설하고 재정비사업을 촉진하는 데 쏟는 정성의 반만이라도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에 힘을 기울인다면 전세대란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변창흠(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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