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복지 제도는 좌파의 고안물이 아니다. 보수우파가 만든 것이다. 그 선구자는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다. 그는 사회보험을 도입하면서 1880년 이렇게 말했다. "(사회보험법의 목적은) 연금 자격자들이 느끼는 보수적인 심리 상태를 수많은 무산자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노령 연금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다루기가 쉽다." 결국 복지 제도 고안의 동기는 전혀 이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비스마르크는 매우 솔직했다. "누구든 이 개념을 포용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
독일의 뒤를 따른 국가가 영국이었다. 1908년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소득 조사를 실시해 일정 규모의 국가연금제를 도입했다. 1911년에는 국민건강보험법도 만들어졌다. 이를 주도한 이가 자유당 출신 재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였다. 좌파 쪽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 비스마르크의 통찰력, 즉 국가 주도의 복지 제도가 선거권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유력한 득표 수단이 된다는 데에 공감했다. 국민연금 재원 마련을 위해 그가 직접세를 인상하자 1909년 제출된 그의 예산안에는 '인민 예산'(People's Budget)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금융의 지배' 니얼 퍼거슨)
득표 수단으로서의 복지가 극단적으로 꽃핀 곳이 후안 페론의 아르헨티나다. 페론은 사람들에게 "즉시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은 지켜졌다. 노동자는 1년을 일하고 13개월치 월급을 받아갔다. 복지 혜택은 스칸디나비아 국가 수준을 따라잡았다. 노동자에게 후한 회사를 찾아내 다른 회사들에 이를 따르라고 강요했다. 회사의 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귀결은 '국가 실패'였다.
한동안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보편적 복지' 논쟁이 잠잠해진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공격과 방어 전략을 가다듬기 위한 여야의 숨 고르기일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이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이란 데는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다. 복지 싸움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 선거 국면에서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복지 발언에는 득표 수단으로서의 복지의 정치적 효용에 대한 계산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내년 대선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가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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