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의료분쟁 조정법, 피해 구제 소홀 여전하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거쳐 공표되면 의료분쟁이 조정을 통해 해결되는 새 길이 열리게 된다. 대한의사협회가 1988년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뒤 23년 동안 관련 단체 간 이견으로 폐기와 상정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법안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새 법안의 핵심은 새로 설립되는 '한국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이 의료분쟁을 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정중재원은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의료진의 과실 여부와 환자 측의 피해 정도를 조사한 후 중재원 내 조정위원회가 적정 배상액을 산정, 중재를 통해 3개월 정도의 기간 안에 분쟁을 끝내도록 한다. 어느 한쪽이 중재안을 거부하면 의료 소송으로 가게 되며 환자 측이 원하면 의료분쟁 초기 단계부터 바로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그간 의료분쟁이 소송을 통한 해결 방식에 의존해 오며 환자 측에 고통을 안겼다는 점에서 새 법안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환자 측은 의료분쟁 소송이 평균 2년 이상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승소 가능성마저 낮아 이만저만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 법안은 의료분쟁 조정으로 배상액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받을 수 있게 해 환자 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해 놓았다.

그러나 새 법안은 의료 과오 입증 책임 소재를 규정짓지 않은 한계도 지니고 있다. 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없는 환자 측 대신 의료진이 과오를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다른 일반 법률과 같이 분쟁을 제기한 환자 측에서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입장을 의식한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의료 분쟁에 관한 새 법안은 조정 기능을 신설했으나 피해 구제 측면에서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의료 과오 입증 책임 소재를 규정하지 않아 논란의 불씨를 낳고 있고 비영리 민간 단체나 보건의료인 단체 추천 위원으로 구성되는 조정위원회가 환자 측이 납득할 수 있는 중재안을 제대로 내놓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운영의 묘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새 법안의 실효성이 결정되겠지만 보완할 여지를 남겨 놓은 채 발효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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