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잠재적인 뇌혈관 질환자를 1만 명으로 봤을 때 1천 명 정도만 병원에 옵니다. 그 중 100명이 제게 시술을 받습니다. 그 중에 얼마나 정상 상태로 돌려놨을까요?" 그가 시술하는 환자는 극히 위험한 환자군에 속한다. 이 때문에 치료 결과는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열 명이 채 안 된다'고 답했을 때 기자는 깜짝 놀랐다.
"놀랍죠? 누가 봐도 최고라고 인정받는 제가(그는 자랑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었다) 100명 중 5, 6명만 완전 정상으로 되돌려놓습니다. 그게 바로 뇌졸중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렇게 심각하고 위험한 줄 몰라요. 그게 답답한 겁니다."
물론 병원에 와서 치료도 안 받거나 주사만 맞고 제 발로 걸어나가는 사람도 꽤 많다. 초기에 가벼운 증상으로 온 덕분이다. 하지만 10명꼴로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나머지 거의 대부분 환자는 크건 작건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일정 위험수준을 넘어선 환자는 막힌 혈관을 뚫어도 완전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이 극히 미미하다.
20년 넘게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한 의사가 '고백'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술 덕분에 많은 환자가 목숨을 건졌고, 심한 후유증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치료의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느 영상의학과 의사의 고백
오늘도 환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일주일 전 새벽 3시 무렵.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의 상태가 이상해서 응급실로 한달음에 왔다. '콜'을 받고 8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고, 혈관촬영 후 곧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15분 만에 왼쪽 중뇌동맥의 혈전을 제거하는 데 성공! 응급처치와 시술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뇌부종이 생겼다. 저체온 치료와 함께 이튿날 두개골을 열어 필사적으로 뇌압을 낮추려 했다. 하지만 환자는 의식을 잃었고, 일주일 만에 폐렴까지 생기면서 결국 숨졌다.
방사선과(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된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전문의 시험 전국 1등. 기세등등과 기고만장이 양쪽 어깨 위로 날개를 폈다. 군의관을 마친 뒤 대학병원 뇌신경계 영상전문 임상교수가 됐다. 뇌 영상을 읽어내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 웬만한 질병은 사진 판독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뇌종양 환자의 MRI 사진을 판독하던 1995년 어느 가을날. 환자의 5살 난 딸이 사진 속 종양 부위를 가리키며 "아저씨, 저게 뭐야?"라고 물었다. 경악했다. 5살 난 아이도 찾을 수 있는 것을 전문가랍시고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호자는 판독 사진을 복사해주면 서울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내 역할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뇌혈관 의사가 되다
길을 바꿨다. 그간 영상 판독이 너무 쉬워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뇌출혈, 뇌경색 환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이 서울로 가는 것은 목숨을 담보한 일이었다. 서울까지 가지도 못했다. 도중에 다 목숨을 잃었으니까.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서울 외 지역에서 이런 신경계 중재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학회에서 인정받았다. 대구에 있는 모든 대학병원은 물론 부산과 마산, 심지어 제주도 병원까지 출장 수술을 가게 됐다. 눈 감을 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술을 받던 환자가 숨지고 말았다. 첫 사망 환자.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고 두들겨 맞았다. 재판정에도 섰다. 재판이 끝난 뒤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위스 취리히, 프랑스 파리 대학병원에서 '정신적 요양 겸 견학'을 갔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한 줄기 생각. '환자는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도대체 무엇을 내게 가르치려 했을까?'
1998~2000년 환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서울 대형 병원들을 추월해 전국 최대 건수의 수술을 기록했다. 살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다. 2004년 유도철사로 혈전을 분쇄하는 뇌경색 치료의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전국 모든 병원에서 쓰이고 있는 치료법이다. 2009년 뇌경색 환자의 혈전을 직접 관에 붙여 끄집어내는 방법을 발표했다. 다시 전국적으로 환자에 적용됐고,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의료기 회사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2010년 뇌경색 환자 수는 더욱 늘었다. 연간 환자 치료건수는 100례를 넘어섰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치료건수를 기록했다. 학회장 자리에도 올랐다.
◆치료의 무기력함을 절감
치료 성적도 우수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뭔가 불안했다. 지금껏 치료한 환자 숫자와 치료 결과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과지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단 1%!'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완전히 정상생활로 돌아간 환자 비율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한 의사라는 말인가?' 뇌졸중을 담당하는 동료 교수가 "혼자 화장실 갈 수 있는 환자가 30% 정도는 된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식물인간으로 남은 환자는 어떻게 할 것이고, 무너진 환자의 가정은 얼마나 많을까.
치료는 예방 효과의 100분의 1밖에 안 됐다. 발병 이전 일반 시민들을 놓고 본다면 1만 분의 1도 채 안 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내 치료 실적은 한낱 숫자 놀음이었다. 국민 총사망통계를 분석해 봤다.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자가 위암 및 폐암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의 심각성을 알지도 못한 채 숨지게 놔 두는 것이 과연 옳을까?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예방가능성을 볼 때 암은 40%에 그쳤지만 심뇌혈관 질환은 80%에 이르렀다. 그저 내 일만 묵묵히 할 수도 있었다. 쓰러져서 응급실로 오면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그뿐이다. 하지만 내 의술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병 전체를 두고 봤을 때 무기력한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병원을 믿지 마세요!" 병원이나 의사의 잘못을 탓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뇌졸중은 현대 의술로서도 무력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뇌졸중의 조짐과 예방 등이 아무쪼록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 제공=대구경북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
사진 설명 = 막힌 혈관을 뚫는 의사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가의 위치에 올랐지만 그는 매번 한계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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