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든 항상 동료들 생각이 나요. 그러면 또 미안해져요…."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천안함 생존 장병 안재근(23'계명대 화학시스템공학과) 씨가 말끝을 흐렸다.
끔찍했던 그날의 충격과 더 이상 볼 수 없는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듯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년, 안 씨의 몸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정신적 외상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안 씨는 지난달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친구와 잡담을 나누며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생지옥이나 다름없던 그날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함수 쪽에서 40㎜ 함포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몸이 튕겨져 나가더라고요."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불안한 듯 두 손을 자꾸 어루만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전이 됐는지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어요.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제가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안 씨는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부축해 정신없이 갑판으로 옮겼다. 그가 적극적으로 전우 구하기에 앞장선 것은 동료들과의 깊은 우애 때문이다. 다른 전함에는 보통 병장이 많아야 3명이지만 천안함은 병장이 10명이 넘었다고 했다. 선상 생활이 힘들어 대개 6개월이면 지상 근무로 옮기지만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싫어 연장 근무를 신청하는 장병들이 많았다는 것. 당시 상병이던 안 씨도 동료들과 함께 함정에서 전역하기 위해 함정 근무를 연장해둔 상태였다. "다들 항상 서로를 챙겼고, 부사관과 사병들의 사이도 매우 좋았습니다. 고(故) 손수민 하사는 고향에 학교까지 같은 저를 마치 친동생처럼 챙겨줬어요. 저도 무척 따랐고요."
형제 같던 전우들을 떠나보낸 것만큼이나 안 씨의 가슴을 아리게 한 것은 유족들과의 만남이었다. "지난해 4월 사망자 시신 수습 당시 생존자와 유족이 다 같이 모인 자리였어요. 저희가 미안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유족들은 우리를 끌어안으시면서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희도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안 씨는 꾸준히 유족들과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고 했다. 사건 원인을 두고 '정말 북한의 소행이 맞느냐'고 묻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화가 치민다고 했다. "정부가 사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있었지만 변치 않는 사실은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겁니다. 46명의 용사와 유족, 생존한 장병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은 그만둬야 합니다."
안 씨는 "나라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과 이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유족의 아픔만은 잊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살아남은 장병들도 동료들의 몫까지 열심히 사는 것이 유족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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