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분만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산모에게 보여준 뒤 바로 신생아실로 데려간다. 길고 긴 출산 끝에 산모도 아기도 지쳤다.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게 최우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엔 신생아를 바로 데려가는 대신 산모의 가슴 위에 한동안 올려놓는다. 세상에 태어나 엄마와 첫 교감하는 시간. 태아의 뇌 및 정서 발달에서 출산 직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밝혀지면서 생긴 변화다.
◆출산 후 처음 느끼는 친밀감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따뜻하고 편안한 양수 위에 떠있다가 좁은 산도를 통과해 세상에 태어나면 아기는 급격한 변화에 놀라 자지러질 듯 운다"며 "하지만 엄마의 가슴 위에 올려주면 울음을 그치거나 잦아들면서 편안해 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신생아는 엄마의 목소리와 젖냄새에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문제는 세상과의 안정된 첫 교감이 출산 후 한두 시간 이내로 제한된다는 것.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이 시기가 지나면 엄마와의 1차 '친밀감' 형성 기회를 놓친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친밀감은 인격이 자라는 영양분이 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신감 넘치는 아이가 되느냐 아니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비굴한 아이가 되느냐는 갓난 아기일 때 엄마에게서 친밀감을 느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친밀감 못 느끼면 중독에 빠질수도
전남대병원 정신과 이무석 교수는 저서 '친밀함-나를 행복하게 하는'(2007년)에서 친밀감 형성의 기회를 놓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한 환자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A씨도 남 앞에서 울지 못했다. 남에게 부탁도 못했다. 나약하게 보일 것 같아서 강한 척 했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받은 뒤 자신이 비록 완벽하지 못해도 사랑받을 만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안심하고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분석 후 A씨는 마음의 현실을 이해했고, 누구와 만나도 자유롭게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불편했던 아이, 남편과의 관계도 편해지고, 병든 아버지의 목욕까지 시켜줄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친밀함을 가로막는 요인들로 불완전한 주체성, 열등감, 시기심, 죄책감 등을 꼽았다. 이런 사람들은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친밀함의 왜곡된 모습으로 알코올 중독, 일 중독, 성 중독, 인터넷 중독에 쉽게 빠지며, 외톨이가 된다.
◆인간관계를 통해 회복 가능
하지만 진정한 친밀함을 느끼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 할로우 박사는 원숭이를 통해 이런 실험을 했다. '갓난 원숭이를 어미'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격리된 원숭이는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이상한 자세로 하루 종일 앉아있거나 자기 발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는 자해를 했다. 새끼를 낳았을 때 돌보지 못하는 비정한 어미가 됐다.'
연구팀은 격리 원숭이를 돕기 위해 치료자 원숭이를 이용했다. '처음엔 격리 원숭이가 치료자 원숭이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친밀감을 보이며 완전히 치료됐다.'
할로우 박사의 실험은 ▷어려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친근한 관계형성이 어려우며 ▷이들은 자라서 대인기피증을 보이지만 ▷치료자를 만나서 관계맺기에 성공하면 누구나 친밀감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초 출산한 박혜정(32) 씨는 "TV 프로그램 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며 새삼 많은 것을 느낀다"며 "등장하는 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부모나 또래와의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보이며, 자신이 진정 사랑받고 관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 그대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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