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담장 안 하기

담장 안 하기

담장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많다. 먼저 남의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 알리기 싫다는 '폐쇄'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높은 담장은 교도소를 연상시킨다. 남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렬한 것이 곧 담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양반들은 집 울타리 담장을 사람 키 높이 이상 쌓지 않았다. 마음먹으면 안을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방한 셈이다. '군자는 평소에도 항상 저잣거리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유교 이념을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장은 권위의 상징이 됐다. 군사 시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웬만한 관공서 건물은 그 담장 높이가 바로 권력의 높이였다. 철조망까지 친 담장도 많았다. 그러나 소통과 화합의 시대에 담장은 장애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대구시가 시작한 것이 담장 허물기 사업.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경북대 병원이 관공서 건물로는 처음 담장을 허물 때 반대가 많았다. 담장이 있어도 환자들이 원외로 나가 관리가 안 되는 마당에 울타리마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방범이 제대로 안 돼 각종 범죄행위가 빈발할 것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대구시의 의지와 병원 측의 지지로 담장은 헐리고 말았다.

한 달 후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크고 작은 범죄행위나 위반 사례가 전달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병원 측의 보고에 시민들은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들은 원내에서 너무나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담장이 없어져 구태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바깥 세상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열림의 미학'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담장 허물기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지금 경북대학교 북편 담장은 거의 허물어져 새로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에 있는 사대부설중고교도 완전 오픈됐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니 학부모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운 모양이다.

이제 대구시와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는 올해부터 아예 '담장 안 하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있는 것을 허무는 것보다 아예 건물 신축 때부터 담장이 없도록 유도한다고 하니 한 단계 발전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담장과 함께 '마음의 벽'도 처음부터 아예 없는 그런 청정(淸淨) 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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