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격물치지(格物致知)

우리 아파트의 매화는 이미 지고 산수유 꽃도 시들하다. 하지만 신천의 개나리꽃은 이제 한창이다. 사실 개나리나 벚꽃은 예쁜 꽃이 아니다. 낱낱을 뜯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간단하고 별 볼품없는 꽃이다. 향기도 없는 밋밋한 그저 그런 꽃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떼를 지어 피어날 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가 있다. 못생긴 꽃들이지만 빼곡히 달려 있고 또 그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을 때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떼를 지어 평범을 미로 전환시키는 것은 꽃나무뿐이 아니다. 멸치나 고등어, 오징어 등의 작은 바닷물고기들도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의 긴 행렬은 우리 마음에 벅찬 감동을 준다. 그들이 줄을 맞춰 열병하는 모습도 좋지만 군장을 하고 길옆으로 행군하는 모습은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이른바 잘생긴 것들, 가치있는 것들은 혼자 있어도 아름답다. 장미는 떼지어 피지 않는다. 난초 역시 그러하며 국화나 목련 역시 몇 그루만 외롭게 서서 두세 송이의 꽃을 피운다. 상어나 고래는 많은 수가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다. 중국의 왕양명은 격물치지를 말했다. 즉 사물의 일어남과 그 운행에서 인간은 진리를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산천초목과 산과 바다의 생물들의 나고 움직임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 사람들은 밤에 벚나무 아래 불을 밝혀 놓고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며 꽃을 감상한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 꽃잎이 흩날려 떨어지기라도 하면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한다. 한때 우리나라도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성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은 낮에 떼지어 걸어다니며 꽃구경을 한다. 다들 제 성질이나 풍습대로 자연을 즐기니까 누가 더 나은 꽃 감상법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본이나 우리 사람들의 꽃구경에서 아쉬운 것은 눈으로만 꽃을 본다는 것이다.

꽃놀이 가면 발을 멈추고 나무들의 꽃 만든 이야기와 그리고 아기 꽃들의 합창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줄 알아야 자연과 제대로 된 교감이 될 것이다. 보잘것없는 못난 꽃, 향기도 없는 밋밋한 꽃, 하지만 여름부터 준비하고 모진 계절도 이겨내고 드디어 떼를 지어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다. 모처럼 어렵게 꽃놀이 가서 휭하니 한번 돌아보고 올 것이 아니라 오디오, 비디오로 격물치지를 느끼고 오면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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