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수줍은 모습으로 멈칫멈칫 다가와 혹시 시간 있냐고, 차 한 잔 하지 않을테냐고 물어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혹은 그런 고백을 한 적은? 그런 풍경이 낯설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청춘남녀는 없다고, 무모하게 접근하여 차 한 잔 하자고 하는 사내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현재 파리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을 읽었다. 그는 '한국 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냐'며 연애불능, 사랑불능의 세태에 문제의식을 던진다. 그는 묻는다. "연애도 스펙에 맞춰 하며, 사랑보다 취업이 먼저다.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미혼여성은 결혼보다 내 집 마련을 먼저 희망한다. 한국의 청춘들은 왜 연애충동마저 손상된 채 방전되어 버린 것일까?"
'초식남' '건어물녀'라는 신조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고, 결혼에 관심이 없는 자식들 때문에 속을 끓이는 어른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능적인 생식'출산 기능에 문제가 생기긴 생겼나보다. 저자는 이전의 젊은 세대가 보여준 적극적인 정치참여, 행동적이고 도전적인 관계 맺기가 사라진 자리에 소박하고 안전하며 수동적인 일군의 젊은 세대들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나 사회변혁 같은 거대담론을 외치며 권력에 저항하는 격렬한 몸짓 대신, 자기만의 미니멀한 세계를 축조하고, 그 속에 고요히 들어앉아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질서에 등을 돌린다.
저자는 '연애하는 사회는 행복하다'고 외치며, 연애는 인간을 굴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결혼도 섹스도 아니고, 마음껏 '연애'할 것을 허락하는 사회는 그 성원들의 삶에 대한 높은 만족도로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는 동시에, 구린 구석이 별로 없는 당당하고 투명한 사회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야성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원죄의식과 청교도적, 유교적 강박으로부터 모두 자유로운 인간이 오직 빛깔과 향기와 감수성으로 만나는 것이다. 야생의 동물들은 그리 오래 탐색하지 않아도 서로가 내뿜는 향기와 음색으로 서로의 짝을 알아본다. 그들은 사랑을 알아보고, 뛰어놀고 함께 춤을 춘다. 지치고 병들면 자연 속에서 그대로 뼈를 묻는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빌헬름 라이히는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억압과 규제의 1차적인 대상은 성 억압이며, 성적 억압의 목표가 온갖 불행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성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어떤 도덕적 지지물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장 자연스러운 종교 체험을 가진다. 삶은 이처럼 단순하다.
'삶은 삶을 불안해하게 만든 인간 구조에 의해서만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하는 사람은 불행한 굴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억압에 잘 길들여져 있어야만 굴러갈 수 있는 사회는 연애에 너그럽지 않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영적인 기운이 창궐하는 경험인 연애를 차단한다. 교육감이 청소년 자유연애금지를 말하는 사회에서, 10대 여성의 성접대를 상납받는 검찰의 모습이 짝을 이룬다. 연애와 성이 금기시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과 성은 억압되고,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러면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사랑할 수 있는 원초적 능력을 되살리는 일, 야성의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구원하는 시작이다. 저자는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위선적인 문화와 세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인간의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사랑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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