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기억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다.
자식을 버린 부모도 마찬가지다. 로드리고 가리시아 감독의 '마더 앤 차일드'는 제목처럼 딸을 버린 엄마와 버림받은 딸을 통해 짙은 모성을 그린 영화다.
14세 때 아이를 낳아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하고 입양 보낸 엄마 카렌(아네트 베닝)은 37년 간 죄책감에 시달리며 딸을 그리워하며 살아오고 있다.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대인관계도 원활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랑도 외면할 정도로 메말랐다. 어머니를 잃은 후 상심하던 그녀는 성격 좋은 직장동료 파코(지미 스미츠)의 접근에 불안해하다가 얼결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카렌의 딸 엘리자베스(나오미 왓츠)는 변호사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랑 없는 관계만을 원하며 차갑게 살고 있다. 과거에 불임 수술을 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임신에 혼란해 한다.
영화는 37년간 애증의 존재 때문에 삶을 옥죄며 살아온 엄마와 딸의 상처를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처럼 버림받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랑조차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의 삶은 가슴을 짓누른다. 오로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남자를 바꿔가며 정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 상처가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먼저 남에게 상처를 주며 차갑고, 배타적으로 살아온 그녀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모성에 눈을 뜬다.
평생 가슴에 못을 박고 살고 있는 엄마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를 버리라고 종용했던 어머니와도 평생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엄마와 딸.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사연을 가지고 흡인력 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담담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후반부 들면서 정서를 자극하고 마지막에는 관객을 울컥하게 만든다.
"내가 빗소리를 듣던 그날 밤, 너도 그 빗소리를 들었니?" 편지를 통해 간신히 딸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엄마는 그 오랜 세월 아팠던 마음을 빗물에 씻는다.
아네트 베닝과 나오미 왓츠의 연기가 뛰어나다. 특히 나오미 왓츠는 실제 만삭의 모습을 보여주며 열연한다.
영화에 캐스팅 된 후 둘째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배속 아이와 교감하는 장면을 실제로 연기했다. 침대에 누워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모성을 실감하는 장면은 특수분장이 아닌 진짜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또 나오미 왓츠는 과감한 전라의 정면 노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제어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버림받아야 했던 운명에 대한 반항이다. 성적인 부분에서도 자신의 선택만 고집한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만이 불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파트 발코니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집 남자에게 가운을 젖혀 자신의 알몸을 보여준다. 성공한 여인의 당당함, 차가운 도발과 함께 결핍된 애정의 소유자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감독은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2000)으로 장편 데뷔했으며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2010 도빌아메리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10 과달라하라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28일 개봉 예정.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25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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