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커피

"블랙커피가 분위기 있어 보여도 맛은 '다방커피'가 최고"

♥ "엄마한테 고급 커피 한번 사줘봐라"

대학생 딸아이는 주말이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질 않는다. 일어나라고 다그칠 때면 잠을 푹 자야 건강해지고 에너지가 충전되어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은 잘한다. 하루이틀도 아닌 일이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든지,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한 주가 지난 뒤 주말, 일어나라고 다그쳐도 일어나지 않던 딸이 스스로 일어나 씻고 거울을 보고 바쁘게 움직이더니 아르바이트 간다면 저녁에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귀가하는 길이 인적이 드문 곳이라 주말마다 딸아이랑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시시콜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때 부모가 아니라 친구가 되었다.

딸아이는 대뜸 묻는다. 엄마는 왜 믹서커피만 고집하는 거야. 내가 아르바이트하는데는 할머니 고객도 오시는데 얼마나 고급스런 커피를 드시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럼 엄마도 한번 사줘봐라." 알았다는 딸아이가 17일 저녁에 일찍 데리러 오란다.

손님이 없어 일찍 마쳤나 했는데 도넛이랑 커피를 주문해 놓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도넛이랑 같이 먹어봐. 바깥 야경도 감상하면서 분위기 있게, 다른 사람 먹는 것 쳐다보지 말고. 딸아이는 큰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음, 진짜 맛있다. 우리 딸 최고다. 근데 커피 이름이 뭐니? "핫 초코?" 내 한마디에 딸의 웃음보가 빵 터졌다. 커피 덕분에 행복한 저녁시간이었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 같은 커피인데 가격은 왜 다르나?

우리 중년은 커피보다 숭늉세대다. 지금도 아련히 숭늉 생각이 난다. 식사 후 숭늉의 구수한 맛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였었다. 디저트라기보다 식후 먹는 맛이 일품이고 즐거움이었다. 지금의 세대는 숭늉의 맛을 알까?

언제부터인가 숭늉에서 커피로 디저트가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 시대적인 현상으로 문화적 교체라고 해야 맞겠다.

커피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디저트문화 또한 접대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인사문화, 즉 접대문화도 커피로 이전됐었음도 자연적 현상이 됐다. 얼마 전만 해도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술 한잔하자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아주 고전적인 접대 형태의 한 단면임을 부인할 수 없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커피 한잔하자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우리도 이젠 시대적 강한 부름 앞에 입맛도 바꿀 수밖에 없다. 언제 우리가 맛없는 숭늉을 먹었는가 하고 커피킬러로서 신세대 흉내를 낸다. 이젠 대한민국 누구 할 것 없이 적당한 커피의 중독 성분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지금은 커피가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세대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을 걱정하리만큼 커피를 사랑하게 됐다. 또한 커피가 너무 흔해졌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지방마다 다른 커피맛도 이색적이고 커피맛 동우회와 커피타임. 커피 먹는 이색행사도 많은 것 같다. 사람 만나는 직업인 친구는 커피로 배가 부르다고 말한다.

정말 커피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앞으로 대학에서도 커피를 연구하는 학문이 생겨나지 않을까.

어쨌거나 커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커피는 중매쟁이다. 커피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섭섭함이나 오해도 푼다.

얼마 전에 뉴스에 커피 한잔의 원가가 123원이라는데 커피숍에서는 3천500~4천원이나 한다. 그러고 보면 커피숍이 우후죽순 많이 생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옆집 이웃을 오랜만에 만났다. 가볍게 목례만 하는 사이지만 용기를 내서 한마디 건넸다. "저~시간나면 커피 한잔합시다." 내말이 썰렁했는지 그냥 웃기만 한다.

이영부(대구 수성구 시지동)

♥ "다음엔 더 비싼 거피 사줄께"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과 친정에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예쁜 커피 전문점이 있었고 언제부턴가 저기 들어가 커피 한잔해야지 했지만 여유가 없었다. 푸념 비슷하게 아들에게 "엄마는 언제 저런데 앉아서 커피 한잔 마셔 보겠노?"라고 했더니 아들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마시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저런 곳은 비싸서 커피도 마음 놓고 못시켜"라고 했더니 얼마나 비쌀라고 자신이 한잔 사주겠다며 손을 잡고 커피전문점으로 불쑥 들어갔다. 웃으며 못 이긴 척 따라 들어가 카운터에 서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들 녀석은 맛난 것 시키라고 자신이 사준다고 힘주어 말하며 다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메리카노 마셔 보고 맛있으면 다음에 더 비싼 핸드드립 커피를 시킬게"했더니 용돈을 꺼내 보이며 자신이 계산했다.

아들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니 왠지 마음이 짠했다. 아들과 커피향, 그 시간이 너무 향기로운 저녁이었다.

장윤희(대구 남구 봉덕동)

♥ 옛날엔 '도시의 세련됨' 상징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지고 나서 숨을 고르고 나면 라일락이 핀다. 라일락 향기는 정말이지 꽃 중의 제일이다. 이맘때가 되면 할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10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댁에는 라일락 향기가 진동했다. 어린 내가 라일락 향기가 좋다고 한 말 때문에 할아버지가 라일락을 특별히 많이 심어 정성스레 가꾸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정리를 하면서 엄마는 어마어마한 양의 커피 봉지가 나왔다고 푸념하셨다. 그렇다. 할아버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신 분이었다. 요즘처럼 고급 원두커피가 아니다. 값싼 인스턴트커피를 즐기셨는데 커피와 설탕, 프림 각각 한 봉지씩 사가면 할아버지가 제일 반가워하셨다. 할아버지의 커피 비율은 1대 2대 1. 특히 설탕이 많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셨다. 할아버지의 이런 습관은 할아버지의 청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만 해도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어릴적 라이벌 관계였던 소꿉친구가 고향으로 돌아와 쓴 커피를 그렇게도 즐겼단다. 할아버지가 처음 맛본 커피는 너무나 쓰고 맛이 없었지만 왠지 그 친구에게 지기 싫어 커피를 억지로 마시기 시작하셨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커피는 '도시의 세련됨'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맛을 위해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어느덧 커피는 할아버지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남들이 막걸리 한 됫박을 챙겨 밭으로 나가실 때 할아버지는 커피를 챙기셨다고 하니 남다른 커피 사랑이다. 요즘은 그런 달콤한 커피는 건강을 위해 사양하지만 가끔은 할아버지의 커피가 그립다. 할아버지가 손수 타주시던, 숭늉 같던 그 커피 말이다.

김자람(대구 동구 지묘동)

♥ "크림은 뱃살 주범이라는데…"

커피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처음 커피맛을 알게 된 것은 사회초년생, 사무실에 커피포트가 있었고 앙증맞게 작은 커피잔이 참 예뻐 보였다. 업무시작 전에 대선배인 그녀가 다리를 꼬고 앉아 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거만하고 오만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에 나도 직장생활 오래하면 저런 농익은(?) 연출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옆에서 다른 선배가 나를 불렀다. "미스 문, 뭐하니? 우리도 커피 한잔 마시자." '우리도 마시자'라는 말에는 나더러 커피를 타 오라는 건데 어떻게 잘 섞어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시는 믹서커피가 없었고 커피, 크림, 설탕이 따로 병에 담겨져 있었는데 어떻게 배합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우리 건설회사에 다니려면 그건 기본이야, 기본"하며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비율로 타면 된다"라고 일러주었다.

점점 더 어려운 주문을 하기에 그냥 대충 세 가지를 섞어서 물을 부어 휘휘 저어서 한잔 주고 나도 마주 앉아 후루룩 쩝쩝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역시 다방 커피맛이 제일 좋아."

선배의 칭찬에 우쭐했는데, 다방 커피맛이란 설탕량이 조금 더 많이 들어가 달짝지근한 맛을 표현한 것이다.

그날 이후 커피맛은 조금 달아야 제일 맛있는 줄 알고, 블랙보다는 믹서커피를 즐겨 마시곤 하는데 이 입맛이 좀체 변하지 않는다. 크림은 뱃살의 주범이라는데 블랙커피가 더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그래도 맛은 다방 커피맛이 최고야.

문권숙(대구 북구 국우동)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

"Dew! How are you?" "I am h-a-p-p-y."

어눌하고 아주 느린 말투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6명의 천사들.

이 아이들의 기분은 '항상 맑음'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오늘은 만들기를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작은 것에도 행복을 발견하는 우리 천사들. 하지만 처음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충격과 놀라움이었다. 손쓰기가 불편한 친구, 서는 데 어려움이 있는 친구.

그렇다. 여기는 특수학교다.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영어로 인해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될 텐데. 이 아이들은 이해도가 조금씩 다르고, 장애의 정도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이 걱정도 잠시, 아이들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따라하고, 내게 자신의 꿈을 영어로 느리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일주일에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들을 만나는 시간. 비록 3시간이지만, 그 어떤 종교활동보다도,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할 때보다도 더 갑절이나 내 가슴은 뛰고 뿌듯해진다.

그 중에서 이름만큼이나 맑은 '이슬'이라는 학생이 있다. 항상 알록달록한 고무줄로 사과머리를 해오는 귀여운 고3 학생이다. 처음에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잡아주던 이슬이. "선생님, 저는 영-어-를 좋-아-해-요. 잘-하-고 싶으니까 도-와-주-세-요"라며 웃어주던 사과꽃 같은 아이. 그리고 말의 속도가 보통 사람의 3배 정도 느리지만, 그 말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한 아이. 그리고 어느 수업시간.

"What is your dream in the future?" "…." 머뭇거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영어로 생각나지 않고. 한국말이 생각나서다. 조금의 고민 뒤에 나를 쳐다본다. 도와달라는 무언의 이야기다.

"I… want to be …." 느린 속도로 아이를 쳐다보면서 말을 한다. 아이의 눈은, 내 입술을, 그리고 귀는 내 목소리를 쫓느라 바빠 보인다. "I want to be a barista…." 의외였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친구여서 장래희망도 그와 관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 "Why?" "따-뜻-한 커피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요."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고, 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따뜻한 커피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 그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는 이슬이가 대견했다.

그리고 이슬이는 약속했다. 다음 주에는 맛있는 커피를 주겠다고. 한 일주일을 이슬이의 커피맛을 기대했던 것 같다. 19살 이슬이의 커피는 어떤 맛일까? 라떼? 카푸치노?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마냥 들떴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이슬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실문을 연다. 조금 늦었다. 수업 시작 후 10분 정도. 왼손에 뭔가를 꼭 쥐었다.

"I am sorry. 커피 가져온다고 늦-었-어요." 이슬이의 손에 든 것은 다름아닌 커피믹스!!!!!!!!!!!!!!!

난 웃었다. 그리고 그 어떤 브랜드 커피보다도, 커피 본고장에서도 맛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도 따뜻한 커피'였다.

유영은(대구 달성군 다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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