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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기우(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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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밭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불러들여 세워 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걸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 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가는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세상에서 정말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제일 미더운 사람은 누구일까? 그거 간단하다. 밖에서 부득이 실례를 할 수밖에 없을 때, 부득불 누군가를 세워둬야 할 때, 그때 선택되는 사람이다.

특히 여자가 그 일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고 봐도 된다. 그걸 동행이라고 하나. 그럴 만한 사람을 은인이라고 하나. 이 시의 화자는 그 미묘한 심리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산지기 얼굴을 하고서라도, 비자림으로 냄새를 감싸면서라도 당신을 보호하리라는 언약.

더하여 그 중요한 일을 스스럼없이 맡겨 주었으므로 나는 당신에게 깊어진 사람이라는 자족. 그 일은 나 혼자만 당신 속에 들어가 본 것처럼, 나 혼자는 나올 수도 없는 곳처럼 비밀스러우리란 수긍. 훗날 당신이 뭐라시면 난 그 일을 떠올리며 웃다가 울리라는 서약. 혼자 쓰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 기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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