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신공항 懲毖錄<징비록>' 왜 안 만드나?

지도자의 역할에 따라 국가나 지역의 명운(命運)이 달라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다. 이를 잘 보여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실제 나폴레옹이 그랬다는 확증은 없지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던 나폴레옹이 앞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자신의 군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죽을 힘을 다해 산을 올랐으나 적(敵)이 한 명도 보이지 않자 나폴레옹은 "이 산이 아닌가 봐" 하며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나폴레옹은 다시 다른 산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올라갔지만 거기에도 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폴레옹이 한 말을 듣고 병사들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아까 그 산이 맞는 것 같다!"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 후 한 달여가 지났다. 암울하기만 한 대구경북이 그나마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던 밀양 신공항 건설이 좌초된 이후 계속 뇌리에 맴돌았던 게 나폴레옹의 이 이야기였다. 한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들 즉 장(長)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와 함께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줄탁동기(口+卒啄同機)란 말도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것이 밀양 신공항을 유치하려는 이 지역의 노력이라면 밖에서 알을 쪼는 어미 닭의 역할은 중앙정부에 비유할 수 있겠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죽을 힘을 다해 알을 쪼았지만 중앙정부와 서울 지역 정치인, 언론 등은 같이 알을 쪼기는커녕 외면하거나 훼방을 놓아 신공항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청와대를 비롯한 중앙정부와 서울 정치인, 언론에 대한 지역민들의 비판은 하늘을 찔렀다.

밀양 신공항이 물 건너간 것을 두고 중앙정부에 화살을 돌리는 게 당연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도 꼭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문제가 없었는가 냉철하게 성찰(省察)해 보자는 말이다. 중앙정부가 같이 알을 쪼지 않은 것은 결국 동남권 신공항 당위성을 그네들에게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끝끝내 평행선을 달린 부산과의 경쟁도 사태의 빌미가 됐다. 결론적으로 신공항 유치 실패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 이 지역에서 자성(自省)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신공항 유치 운동을 할 때엔 삭발한 이들이 줄을 이었지만 백지화 후 중앙정부에 항의하며 삭발을 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 대통령 등 정부에 지역의 격앙된 여론을 제대로 전달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자리를 걸고 공항 유치를 이뤄내겠다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 중 실제 자리에서 물러난 이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대통령이 얘기한 '욱하는 성질'을 마땅히 보여줘야 할 시점인데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실패(失敗)에서 깨닫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다시 실패하기 십상이다. 다음에 성공하려면 왜 실패했는가 그 원인을 따져보고 실패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실패에서 성공의 비결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다. 밀양 신공항 유치 실패에서 이 지역 지도자들을 비롯한 시도민들이 깨달음과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공항은 물론 다른 일에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동남권 신공항 유치에 대한 백서(白書'white paper)를 만들어야 한다. 이 백서 첫머리에는 신공항 유치 실패를 반성하는 이 지역 지도자들의 진솔한 반성문을 싣는 게 마땅하다. 공항 유치를 위한 전 과정과 시도민들의 노력은 물론 지도자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가도 낱낱이 담아야 한다. 신공항 건설에 반대한 이들의 언행(言行)도 엄정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백서에 신공항 유치 실패 원인들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위대한 까닭은 임진왜란 극복에도 있겠지만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한 데에도 있다. 왜란 이전 국내외 정세에서부터 왜란의 실상, 전쟁 후의 상황까지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기술해 후일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담아낸 것이다. '신공항 징비록'을 만들지 않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대구경북은 실패의 사슬을 끊기 어려울 것이다.

이대현(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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