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카운티의 박물관장이 불국사를 방문했을 때 경주에 대한 소감을 밝히면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감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물관장이 언급한 유형의 문화재와 함께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정신적 자산과 전통입니다. 무형의 그것은 더욱 심혈을 기울여 계승할 귀중한 유산으로 현대에 되살려야 하는 책임이 후손에게 있습니다. 그것에는 천년을 이어온 조상의 지혜와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토함산 석굴암에는 태권도 품새의 원형인 금강역사상이 있고 분황사 모전석탑에도 유사한 인왕상이 있습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경주에서 개최한 것은 역사적 배경과 태권도의 정신적 모태인 화랑정신이 꽃핀 곳이기 때문입니다.
경주에서 개최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149개국이 참여한 성대한 국제행사로 1991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치러졌습니다. 경주는 인구 25만 명이 조금 넘는 도시입니다. 경주를 찾은 인원이 선수단, 임원 관광객 등 1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인구 25만 명의 도시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치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작은 도시에서 이 정도 규모의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려면 남녀노소 모두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쏟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불국사도 IOC 위원과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각국 선수단 대표를 초청해 오찬을 대접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숭상하는 태권도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보여주는 것은 국위를 선양하는 공동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주시민 모두가 같은 뜻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대학 총장을 퇴임한 분은 통역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자신의 일을 미루고 통역에 나섰습니다. 경주시민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넉넉한 예산과 충분한 기간이 주어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입니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손님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건이 충분치 않았기에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관심이 더욱 필요했고 작은 정성이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었습니다. 예산이 닿지 못하는 부분을 자원봉사자와 서포터스들의 열정으로 채웠고 성공적 대회를 염원하는 성의가 보태져 시민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풍족한 예산이라면 좋겠으나 그것으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선수단 가슴에 남는 감동입니다. 신라의 천년 도읍이며 태권도의 발상지인 경주에서 개최되었던 대회는 선수단과 참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입니다. 천년 무술의 원형을 간직하고 그 전통 위에 오늘의 태권도를 발전시킨 한국인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큰 잔치를 치르다 보면 이웃 분들의 눈에 다소 부족한 면이 보이고 아랫마을에서는 그 경험을 거울 삼아 다음 잔치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살림은 빠듯한데 손님은 많고 그럴 때 우리 이웃들은 관대함으로 일손을 덜어 주었습니다. 잔치에서 음식 수와 하객을 말하며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준비한 이의 정성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덕이었습니다. 조상들은 찬 중에 으뜸은 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미담이 향기롭습니다. 어떤 분은 자비로 외국 선수단에 식사를 대접하고, 다른 단체에서는 45인승 버스를 무료로 제공하여 대회장까지 운행하였으며 천년 고도 경주의 특성을 살려 문화유적과 시내 관광 안내에 발 벗고 나선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가정집에 선수와 임원을 초대하여 한국 가정의 문화와 인심을 보여준 분들 등 작지만 따뜻한 정으로 선수단과 임원들을 살폈습니다. 이분들은 개인적인 일을 제쳐 두고 자발적으로 동참하신 분들입니다. 자원봉사의 주체는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관과 몇몇 단체가 주도한 행사가 아니라 시민 전체의 참여와 관심으로 만들어진 축제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계 대회를 성의를 다해 치르고 손님들의 가슴에 다시 찾고 싶은 경주, 오래도록 남을 경주로 기억되었다면 경주시민이 힘을 모은 태권도 큰잔치는 자랑으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성타(불국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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