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지난주 전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중 거의 절반의 면적을 해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는 네 차례에 걸쳐 토지거래허가구역의 86.4%를 해제하게 되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실수요자가 투기가 아닌 목적으로 땅을 구입하는 것이 입증될 때만 거래를 허가하는 지역이다. 개발예정구역이나 인근지역에서 땅값 상승이 우려되는 경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특별관리구역이 지정된다. 이 허가구역이 해제됨에 따라 실수요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최근 2년간 지가변동률이 연평균 1% 내외이고 거래량도 2년 연속 감소하여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해도 지가상승의 우려가 적다고 밝혔다. 땅값만 오르지 않는다면 개발예정구역이나 그 주변에서 토지거래를 자유화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개발이익 환수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그나마 외지인의 무분별한 토지투기를 막아왔던 핵심정책수단을 무력화해도 괜찮을까? 이러한 우려 때문에 이번 조치가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둔 민원해결용이거나 주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렛대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토지문제는 땅값이 오르지 않고 토지거래량이 줄어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땅값이 너무 높고 투기적인 거래가 너무 많으며 토지소유가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땅값은 OECD 중에서 국민총생산액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분양주택의 누적과 재개발 뉴타운사업 중단의 핵심원인은 바로 높은 땅값에 있다. 땅값이 높으니 신규주택을 건설하여 분양하더라도 분양가격이 높아 미분양주택이 쌓이게 된다. 재정비사업도 땅값이 너무 올라 수익성이 나빠지고 곳곳에서 중단사태를 맞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민간토지면적의 57%, 상위 10%가 98.3%를 소유하고 있는 토지소유불평등 때문에 지가상승 시 계층간, 지역간 자산격차뿐만 아니라 소득격차를 더욱 크게 만든다.
높은 지가는 생산원가를 인상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토지의 편중과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은 사회적 통합을 훼손하고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정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정작 토지정책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2008년 10월 30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며 획기적인 토지이용규제 완화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때 발표한 수도권 규제 완화정책은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고 지방산업의 경쟁력 기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정부가 2009년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다주택자의 양도소득과 개인과 법인의 비사업용 토지의 양도소득에 대한 중과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정책이었다.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가 채택한 정책은 개발제한구역을 대규모로 해제하는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재정비사업에 대한 규제완화조치였다. 경기상승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러한 제도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거리낌없이 채택되었다. 세계금융위기 때문에 규제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택가격과 토지가격이 안정되었을 때야말로 도시계획과 부동산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최적기이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도 토지이용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자는 우트와트(Uthwatt) 보고서를 작성하였던 영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경파괴와 난개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전후 재건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였던 이 제도는 영국의 개발이익 환수와 토지보상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프랑스의 파리대도시권에서는 개인간의 토지거래에 대해 파리시청이 선매권을 보유하고 있어서 공공이 필요한 토지를 우선 매입하고 미리 비축할 수 있다. 토지소유자는 시청이 제시한 금액으로 매각하지 않으려면 매각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토지의 손실보상액도 공공사업 조사절차 개시 1년 전의 시점으로 평가하여 개발이익을 철저히 환수한다.
땅값이 안정되었을 때 손쉬운 규제 완화정책을 꺼내들고 인기를 좇을 것이 아니라, 토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대폭 해제하고 다시 땅값이 오르면 뒤늦게 허가구역과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를 중복해서 지정하던 과거정부의 경험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 토지정책의 철학을 재정립할 적기이다.
변창흠(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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