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기북면 덕동마을은 산 속에 묻혀 있는 보석 같은 존재다. 1992년 문화관광부가 문화마을로 지정할 만큼 수려한 산수와 유서 깊은 내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덕동마을은 예로부터 산수가 좋기로 이름이 높았다. 30가구가 사는 작은마을에 구곡(九曲)'삼기(三奇)'팔경(八景)으로 명명된 명소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펄쳐지는 것이 절경인 셈이다. 360여 년 전 사의당 이강이 터를 잡은 이후 여강 이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산 까닭에 문화재가 즐비하고 민속전시관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진 것에 비해 이름은 덜 알려졌다. 덕동마을에서 차로 40~50여 분 거리에 있는 양동마을이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친 반면 덕동마을은 이제 조금 이름을 알렸을 뿐이다.
◆수백년 이어온 소나무 군락
덕동마을의 대표 자랑거리다. 2006년 산림청'생명의숲 국민운동'유한킴벌리가 공동 주최한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할 정도로 숲이 좋다. 덕동마을 숲은 마을 앞을 흐르는 용계천을 따라 조성된 세개의 숲(송계숲'정계숲'섬솔밭)이 중심을 이룬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수백년을 이어온 마을의 내력을 말해주 듯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200여 년 된 소나무가 너른 그늘을 제공하는 송계숲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송계숲이다. 송계숲 옆 청소년수련관 자리에는 포항전통문화체험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송계숲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덕동민속전시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애은당 고택이 나오고 맞은편에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은행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세덕사지와 호산지당이 나온다. 세덕사지는 서원 세덕사가 있던 자리. 세덕사는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화를 당해 지금은 옛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세덕사지 옆에는 용계정이 자리잡고 있다. 용계정 맞은편이 정계숲이다. 계곡 암반 위에 걸쳐진 용계정과 조화로운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숲이다. 호산지당은 1974년 만든 인공연못이다. 호산지당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숲은 섬솔밭이다. 정자와 벤치가 마련돼 있어 연못과 솔숲이 연출하는 호젓한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 좋다.
덕동마을 숲에 서면 시름이 없어진다. 소나무 숲을 빠져 나온 솔바람 소리와 용계천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더위를 달래기도 그만이다. 기자가 덕동마을을 찾은 날은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기온이 높았지만 숲에만 들어서면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도 숲에만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더위를 잊을 정도라고 했다.
덕동마을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기이한 소나무가 곳곳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네 어귀에 있는 도하송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길 한가운데 늘어 뜨린 소나무 가지 때문에 말을 타고 마을로 들어오던 선비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면서 도하송(到下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길을 가로 막고 있던 가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2년 전 부러졌다. 부러진 도하송 가지는 덕동민속전시관 앞에 전시돼 있다.
◆문화재
경상북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43호 용계정을 비롯해 경상북도지정 민속자료 제80호 애은당 고택과 제81호 사우정 고택, 경상북도지정 문화재자료 제206호 이원돌가옥(여연당), 등록문화재 제373호 오덕리 근대한옥, 덕계서당 등이 있다. 세덕사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용계정은 1687년(숙종 14년) 건립될 당시 입향조의 호를 따 사의정이라 불렸으나 이후 용계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용계정은 서원철폐 당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밤새도록 세덕사와 용계정 사이에 담을 쌓아 세덕사와 분리시키는 바람에 겨우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원돌가옥, 사우정 고택, 덕계서당, 오덕리근대한옥은 나란히 붙어 있다. 애은당 고택에서 좁은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겨운 돌담에 기와를 얹은 고택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더욱 빛나는 고택들을 벗삼아 한가롭게 거닐며 느림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고택마다 사람이 살고 있어 들어가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덕동민속전시관
마을에서 보존'관리해 온 유물들을 전시한 곳으로 2004년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건립했다. 전시관에는 조선후기 시서화의 대가 표암 강세황이 쓴 세덕사 현판 진본을 비롯해 세덕사 관련 유물이 가득 진열돼 있다. 세덕사가 철폐될 당시 조상들이 용계정에 숨겨 놓은 유물을 후손인 이동진(80'덕동민속전시관 관장) 씨가 찾아낸 것들이다. 이 씨가 용계정에서 발견한 유물은 120여 점. 이 가운데 67점이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높다.
또 전시관에서는 선조들이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용품도 전시돼 있다. 옥수수를 끼워 만든 효자손, 경주 남산 옥돌로 만든 안경, 백자 향로 등을 보면 옛사람의 체취가 물씬 느껴진다. 실내 전시관이 좁을 정도로 빼곡히 진열된 유물들을 보면 귀하고 우수한 유물을 잘 보존해온 덕동마을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관은 토'일요일(오전 10~오후 4시)에만 문을 연다. 무보수로 봉사를 하고 있는 이 관장이 평일에는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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