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와 집주인의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빈번하게 만들어지는 소재다. 붙어있지만 도대체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이 도시 생활이다. 소외된 현대인의 불안 심리와 어두운 심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낯선 집과 낯선 주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힐러리 스웽크의 '레지던트'는 혼자 사는 여인이 낯선 집에 세 들었다가 몹쓸 집주인을 만나 온갖 고초를 다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는 바람에 헤어지고 홀로서기에 나선 줄리엣(힐러리 스웽크). 뉴욕의 한 병원에 의사로 일하는 그녀는 전망도 좋고, 넓고, 거기다 저렴하기까지 한 집을 얻는다. 오래된 집의 소음이 귀에 거슬리지만 집주인 맥스(제프리 딘 모건)도 세련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완벽한 행운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매력적인 주인 맥스에게 돌발적인 키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이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자세히 보니 집주인도 정상적이지는 않다. 그녀가 다가갈 때는 망설이더니, 곧이어 집요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본다. 문제는 자고 나면 몸이 이상한 것이다. 매일 포도주 몇 잔 마시고 자는데, 일어나면 대낮이다. 피로감이 몰려들어 매일이다시피 지각한다.
친구의 조언을 듣고 그녀는 집에 CCTV를 설치한다. 그런데 영상을 본 그녀는 경악한다. 자신이 잠든 사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레지던트'는 전문의 코스를 밟는 주인공의 직업에 '거주자'의 뜻까지 담고 있는 제목이다. 집세 비싸기로 세계 제일인 뉴욕의 한 건물에 입주한 매력적인 여성의 수난기를 그린 스릴러다.
나의 자유로운 공간인 집마저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는 설정이 영화의 포인트다. 보이지 않는 출입구에 훔쳐보기가 가능한 구멍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나만의 공간인 집이지만, 집주인에게는 유리집이나 마찬가지다.
샤론 스톤의 '슬리버'(1993년)라는 영화가 있었다. 자투리땅에 만들어진 좁고 높은 건물인 슬리버에 입주한 주인공이 갖가지 첨단 장비로 훔쳐보는 집주인에게 유린당하는 스릴러였다. '슬리버'가 당시 희대의 섹시 이미지를 지닌 샤론 스톤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레지던트'는 집주인의 이상심리를 더했다. '레지던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와 '슬리버'가 교접한 영화의 느낌을 준다.
여느 스릴러가 범인을 감추고 진행되지만 '레지던트'는 초반부터 범인의 존재를 알려준다. 범인과 주인공의 밀고당기는 서스펜스가 핵심이지만, 중반을 넘게까지 여주인공이 당하는 모습을 가학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스펜스의 맛은 떨어진다. 집주인의 이상심리에 대한 배경도 밀도 있게 설명되지 않고, 극적 장치도 미흡하다. 인물의 행동을 쫓아 카메라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관객의 호기심과 밀착되지는 못한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는 입댈 필요가 없고 제프리 딘 모건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감독 안티 조카넨은 뮤직비디오를 주로 연출해온 핀란드 출신 감독이다. 러닝타임 91분. 18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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