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이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로 공문이 하나 왔다. 내용은 대구대교구에는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가 없으니까 이와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으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구대교구에는 엄연히 정평위가 있었다.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대구대교구 정평위가 워낙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대구대교구에 정평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지난달 말, 대구대교구 정평위가 출범 미사를 가졌다. 기존 정평위를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의미지만 사실상 출범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중심에 정평위 위원장인 김영호(48'사진)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신부가 있었다.
◆인간 삶, 사회와 소통하도록 노력
"지난해 주교회의로부터 공문을 받고 이참에 정평위가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야겠다 싶어 조환길 대주교님께 보고했고 이후 정평위 운영을 착실히 준비했습니다."
김 신부는 국내 처음으로 설정 100주년을 맞는 등 전통과 위상을 가진 대구대교구에서 주교회의 산하 공식 기구인 정평위 활동이 없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대구대교구 정평위가 유명무실한 데는 아무래도 대구 지역의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 지역의 보수성으로 교회 안팎에서 정평위라 하면 단순히 정치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대구대교구 내에서도 정평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자연스레 활동이 없었다. "정평위에 대한 오해가 많아요. 정평위는 교회 안팎의 인권이나 생태, 노동, 복지 등과 관련해 활동하고 정당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아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이 연결되어 있는데 대구 교회는 여태껏 종교적인 시각에서만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죠. 이제는 복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정평위 활동은 중요하죠. 교회가 인간의 삶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김 신부는 정평위 활동이 앞으로 대구대교구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대교구에서 정평위 활동을 본격적으로 한다는 소식에 다른 지역 천주교계에서도 꽤 놀랐다는 것. 다소 보수적인 이미지로 비치는 대구대교구에서 정평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면 자연스레 대구대교구의 위상도 올라간다고 했다.
◆소위원회별로 다양한 활동
정평위는 앞으로 인권복지와 환경생태, 도농공동체, 노동, 교육, 다문화, 미디어 등 7개 소위원회로 나눠 소위원회마다 여러 가지 사안을 정해 교육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소위원회마다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으로 이뤄져 모두 80여 명이 정평위 활동에 참가한다.
정평위에서 가장 현안이 되는 것은 경북 칠곡군 미군기지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의혹이다. 지난달 말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회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촉구 대구경북대책위원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고엽제 문제점과 앞으로 악영향 등은 물론, 군사기지 문제와 나아가 소파(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 등도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 이를 위해 정평위에서는 왜관에 있는 성당들을 돌며 생명평화 미사를 펼치고 18일에는 공동 생명평화 미사도 열 예정이다.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죠. 4대강 개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너무 일방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죠."
사회교리를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신자들은 믿음만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이제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 지금까지는 이에 대해 교회 내에서조차 너무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사순절이나 대림절 때 진행되는 특강을 활용해 성당에 사회교리학교를 열거나 교구 내 상설 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또 청년을 위한 인권캠프나 리더십 캠프 등도 추진하고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소위원회 사안별로 미사와 강의 등을 꾸준히 열 계획이다. "가난하고 소외받으며 억압받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싶어요. 정평위가 솔선수범할 겁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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