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컬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낮과 저녁 시간에는 경기장을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저변이 넓지 않은데다 자치단체 등 어느 곳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들은 컬링이 좋아 컬링을 할 뿐이다.
금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11시 30분, 대구 북구 고성동 대구시민운동장 내 대구빙상장. 20, 30대의 남녀 10명이 모였다. 2011 대구스포츠클럽 남녀 컬링반 회원들이다. 컬링반은 남녀 총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양현민, 이승욱, 김수홍, 유승우, 서봉교, 예준영, 최홍주, 임현호, 서봉호, 안진우, 노형석, 서율환, 구본훈, 김상훈, 김윤호, 이근영, 임효근, 장수영, 이창선 씨 등 남성 19명과 정연희, 김진령, 양지, 서보화 씨 등 여성 4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초'중'고 다닐 때 컬링을 배워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지만 대다수는 초보자들이다. 컬링반의 코치는 여고 시절 컬링에 입문한 후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이효경(27) 씨가 맡고 있다.
계절은 한여름을 향해 달려가지만 한밤의 빙상장에는 한기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두툼한 옷차림을 한 회원들은 컬링을 하기 위해 스톤 등 단체 장비와 개인 장비를 하나하나 챙겼다.
대구빙상장은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를 주로 하는 곳. 이 때문에 컬링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빙상장 바닥을 자세히 봐야 컬링장임을 알 수 있다. 하우스 등 경기장 형태는 1990년대 후반 대구에 컬링이 보급될 당시 새겨진 것이다.
대구 컬링은 초창기 한때 저변을 넓혔으나 주축 멤버들이 경북으로 빠져나가면서 쇠퇴일로를 걸었다. 2006년 의성에 컬링 전용 훈련장인 경북의성컬링센터가 개관하면서 대다수 컬링 관계자들은 그곳으로 옮겨갔다.
이 때문에 대구의 생활체육 컬링 동호인들은 찬밥신세가 됐다. 의성센터가 경북의 컬링선수 육성에 치중하는 관계로 대구에서 컬링을 하는 사람들은 설 땅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지난해 6월 대구스포츠클럽이 대구빙상장에서 컬링반을 개설했다. 대구시체육회가 전국동계체전에 참가할 팀을 만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컬링반 개설을 유도한 측면도 있지만 컬링 동호인들의 요청도 있었다.
이 코치는 "학교에서 컬링을 배운 일부 남성 회원들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컬링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경기장 표시도 제대로 나지 않는 곳에서 형편없는 장비로 운동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린 즐겁게 운동하기 때문에 만족도는 어느 종목의 동호회보다 높다"고 했다. 실제 컬링반은 값이 비싼 스톤을 구입할 돈이 없어 버려진 스톤의 손잡이를 수리해 사용하고 있으며 신발, 브러시 등도 값싼 것을 사용하고 있다.
컬링반은 현재 남녀 구분없이 연습을 하고 게임을 하지만 대회 출전 때는 남자 두 팀과 여자 한 팀을 꾸린다. 남자 팀은 컬링을 배운 적이 있는 선수 출신의 팀과 경북대 동아리 반 두 팀이다.
남자 선수 출신 팀은 짧은 기간에 성과를 냈다. 올 1월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제9회 태백곰기전국컬링대회 남자일반부에서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덕분에 지난달 경기도 의정부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인 2011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었다. 한국선수권 조별리그에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지만 세계대회에 출전한 강호들을 상대로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제대로 된 경기장에서 손발 한 번 맞춰보지 못한 이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에 잔뜩 고무돼 있다. 회원들은 "연습만 규칙적으로 한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여자 팀은 올 2월 제92회 전국동계체전에 여자일반부 대구 대표로 출전했다. 팀 구성 후 첫 출전한 대회에서 1회전 탈락했지만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 코치는 "선수가 4명뿐이라 엔트리(5명)도 채우지 못했고, 컬링장에서 실전 연습을 한차례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동계체전에 참가했다"면서 "풀게임(10엔드)을 해 보지 않아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어 했고, 경기장 사정을 잘 몰라 많이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회 출전 때 컬링 팀의 감독을 맡는 대구스포츠클럽 박기범 사무국장은 "컬링 동호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프다"며 "당장 대구에 컬링장을 지을 수 없는 만큼 대구시에서 컬링을 즐길 수 있도록 현재 시설을 보완하거나 대체 시설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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