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이 선택일 수 없듯이 죽음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누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죽음 병동에서 일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고 배운다.
어느 날 한 노(老) 의사 선배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 과장, 이영자(가명·70) 님을 아시나?"/ "선생님께서 어떻게 우리 엄마를 아세요?" 전화를 한 분은 80세가 다 된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는 의사였다. 사회 통념상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진 분이다. 대중가요를 배울 수 있을 만큼 아직도 정정하시고, 부인도 살아계신다. 물론 자식들은 사회의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이영자 님이 요즘 통 노래 연습하러 나오지 않아서 궁금해서 전화했소." "그러세요? 전 엄마가 선생님과 같이 노래 배우시는 줄은 몰랐어요. 엄마는 암입니다. 항암치료 중인데 힘들어하십니다."
전화를 마치고, 뜬금없이 화가 났다. 평생을 커피 한잔 마시지 않는 자연식을 했고, 자식이 암에 걸려도 자신의 건강관리가 더 중요한 분이 우리 엄마였다. 두 분 모두 '쿨한' 삶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삶이나 죽음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핏덩이 같은 어린 세 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해서 살다가, 마지막에는 그 딸이 그리워서 편지와 돈 십만원 주머니 넣어놓고 떠나신 할머니도 있다. 이혼 후 노숙자로 살다가 암이 발견되어 의료원에 입원했고, 마지막에는 가톨릭에 귀의해서 우아하게 인생을 정리하면서 떠난 아저씨도 있다. 사망진단서를 가지러온 온 그의 잘생긴 동생과 군인인 아들이 불량스런 그 때문에 자신들은 힘든 인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4년 전 양을천(63·자원봉사자 회장) 님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처음 만났다. 직장암을 앓던 부인을 먼저 보내고 뜻한 바 있어, 정년퇴직하자마자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했다. 유도 사범이었던 그는 월'목요일은 우리 병동에서 목욕봉사를 하고, 월수·금요일에는 체조교실을 연다. 봉사자 간 여러 문제뿐 아니라, 나의 힘든 문제도 상담해준다. 등산을 좋아해서 가끔 해외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봉사로 시작해서 봉사로 마무리한다. 담석증을 앓는 딸이 수술을 받으면 봉사를 접고 간병을 한다.
헬스장에 같이 다니는 다른 봉사자 말이 탤런트 권상우의 식스팩 복근을 회장님도 갖고 있단다. 그는 일요일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육식도 좋아한다. 알뜰살뜰 챙겨주는 부인도 없다. 그래도 그는 내가 이제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현실적인 큰사람이었다. 오랫동안 행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자유를 잘 사용하는 멘토(Mentor)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다.
김여환<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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