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변호사의 일상과 사랑방

변호사를 꿈꾸는 기특한 녀석을 만났다. 중1인데도 생각이 깊고, 나름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다. 변호사에 대한 궁금증이 끝이 없다. 법정은 어떻게 생긴 곳인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변호사의 고민은 무엇인지 등 질문이 많다. "변호사님, 배지(badge) 하나 구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가진 배지를 전해주자 아이는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다.

변호사의 일상은 어떨까. 의뢰인과 상담하고, 변론준비를 위하여 소장'준비서면을 작성하고, 법정에서 의뢰인을 위한 변론을 한다. 시간에 맞추어 구치소'교도소의 의뢰인들을 접견하고, 법원 민원실'시청'가정법률상담소 등에서 일반인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시간을 할애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학교'보호관찰소 등을 방문하여 강연도 한다. 시간에 맞춰 바쁘게 살아가면서 때로는 시간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시간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변호사의 중요한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바로 기다림이다. 사무실에서는 손님을 기다리고, 변론이 끝나면 초조히 재판 결과를 기다린다. 재판이 있는 날은 지루하게 나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공실로 향한다. 공실(共室)은 법원 내의 변론준비실이자 변호사들의 쉼터다. 이곳에서 컴퓨터로 정보검색을 하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대기시간을 이용하여 속기 바둑을 두거나 신문을 챙겨보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큰 의미는 만남에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잔인한 신의 얼굴을 한 '시간'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분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구수한 입담으로 전설과 같은 법조비화를 전해주시는 L 전 변협회장,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관계 인사들의 프로필과 근황을 손금처럼 파악하여 인물평까지 곁들여주시는 P 변협부회장, 새까맣게 어린 후배들에게조차 체면을 구겨가며 분위기를 띄워주시는 바둑광 K 변호사 등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푸근한 사람들이 많다.

변호사는 때론 고독한 직업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재판의 준비나 결과에 대한 고뇌도 홀로 감내해야 한다. 한결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지친 마음으로 공실에 들어서면, 쏟아지는 터줏대감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으로 이내 위안을 받게 된다. 동료들이 모여 수다로 긴장을 풀고 정보교류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랑방인 이곳에서, 청렴으로 상징되는 대구법조문화의 맥을 이어주는 힘이 시작된다 하겠다.

오늘도 찻값을 낼 구실을 찾으며 회원들이 게시판을 흘끔거린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순번의 끝자락에 나도 신문에 글을 쓰는 영광으로 이름 석 자를 적어볼까 한다.

이석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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