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불어터진 군용건빵처럼 맛대가리 없는 시간을 건져 먹으며 우리는 권태라는 우리 속에서 사육당하고 있다.' 어느 시인이 쓴 낙서의 하나다. 20대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에 불어터진 군용건빵, 해면체처럼 흐물거리는 희뿌연 물체는 더이상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견고함은 사라지고, 손으로도 건질 수 없는, 그렇게 무료하게,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살면서 자신에게 자주 물어보는 것이 '너는 행복하냐?'는 것이다. 혹시 권태라는 우리 속에서 시간의 노예로 사육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본 영화가 있다. 로저 도널드슨 감독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2005년)이다.
나이가 들면서 용기와 꿈, 열정이 사라지는 이들이 많다. 뉴질랜드 시골의 버트 먼로(안소니 홉킨스)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협심증에 늘 약을 먹고 있는 노년이지만 그에게 꿈이 있다. 자신의 오토바이로 시속 200마일(321㎞)을 넘게 달려보는 것이다. 인디언은 1920년산 오토바이의 이름이다.
초기 시속 56마일(90㎞)인 인디언을 꾸준히 튜닝했다. 조이고 닦고 부품을 갈았지만, 여전히 몸체는 30년이 넘고, 연료통 뚜껑도 코르크마개다. 안전성 제로의 이 낡은 오토바이로 그는 시속 300㎞를 넘게 달려 보겠다고 한다.
이웃의 도움과 담보대출을 통해 배를 타고 뉴질랜드에서 미국으로 넘어온다. 보너빌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보너빌은 시속 1000㎞로 달릴 수 있는 소금 평원으로 고속자동차경주로 유명한 곳이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배 노임대신 요리를 하고, 250달러하는 차를 사기위해 남의 차를 고쳐 주고, 차 뒷좌석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그는 꾸준히 보너빌로 간다. 절차를 몰라 출전등록도 못해 참가가 불가능했지만, "여기서 달리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다"는 그의 말에 감복한 이들의 도움으로 결국 그는 꿈에 그리던 시속 200마일에 도전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구형 오토바이로 1000cc 이하급 신기록을 세운 버트 먼로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1967년 그가 세운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버트 먼로의 꿈은 신기록도 아니고, 완주도 아니다. 자신처럼 오래된 낡은 오토바이로 200마일을 넘어보는 것이었다. 엔진의 열기에 종아리가 스테이크처럼 화상을 입어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단 5분만이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해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 평생을 사는 것보다 더 의미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꿈과 도전, 용기와 열정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야할 때 가지 않으면, 정작 가려 할 때는 갈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까지 맛대가리 없는 시간을 건져먹고 있을 것인가.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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