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현종(玄宗)은 어느 날 비빈과 궁녀들을 데리고 태액지(太液池)라는 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연못에는 마침 연꽃이 막 피어올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연꽃을 감상하던 현종이 "어떤 꽃의 아름다움도 해어화(解語花)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해어화'란 문자 그대로 '말을 알아듣는 꽃'으로 옆에 있던 양귀비(楊貴妃)를 이르는 말이었다. '해어화'란 말의 유래이다. 조선시대의 우리 사대부들도 시와 풍류가 통하는 기생들을 해어화라 불렀다. 격조 있는 예인(藝人)이었던 기생들이 그래서 당대의 문인묵객이었던 선비들과 얽힌 애틋한 사연들을 많이 남겼다.
기생들은 비록 노류장화(路柳墻花)의 신세라는 슬픈 운명을 안고 살았지만, 절의와 지조를 지켰던 해어화들도 많았다. 재색(才色)을 겸비한 기생들은 양반 선비들과 풍류를 나눴고,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진솔하게 읊은 시로 우리 여류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하기도 했다.
퇴계 이황(李滉)과 애달픈 사연을 가졌던 기생 두향(杜香) 역시 꽃 중의 꽃인 해어화였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세의 퇴계와 짧지만 영원한 사랑을 나눴던 18세의 관기(官妓) 두향. 풀 먹인 안동포처럼 처신이 올곧았고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도학자의 외로운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로 자리했던 두향. 그녀는 다시 풍기군수로 떠나는 퇴계와 9개월 만에 헤어져야 했다.
'이별이 하두 설어워 한 잔 들고 슬피울제, 어느덧 술도 다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고.' 두향은 떠나는 퇴계에게 시 한 수와 매화분 하나를 전했다. 그리고 퇴계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퇴계와 헤어진 뒤 관기를 그만두고 함께 퇴계와 노닐던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 퇴계만을 그리며 살다 퇴계의 부음을 듣고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퇴계와 두향의 이토록 슬픈 로맨스가 뮤지컬 '사모'(思慕)로 되살아났다. '사모'는 고택(古宅)을 무대로 활용한 실경 뮤지컬이어서 퇴계와 안동의 정서와 정취를 한껏 더한다. 사모는 지난 11일 밤 안동댐 민속촌 내 동산서원에서 막을 올린 데 이어 격주로 주말 공연을 계속한다. 해어화 두향을 통해 고고한 선비이자 위대한 유학자의 인간적인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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