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53)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 실장은 '사고 전담반장'으로 불린다. 1990년대 이후 국민적 관심을 불러온 두 번의 구제역과 세 차례의 조류인플루엔자가 모두 이 실장 소관이었다. 특히 2008년 축산국장으로 실무책임자였던 당시 광우병 사태를 그는 잊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욕설섞인 비난이 하루하루 그의 숨통을 조여 오면서 '광우병 5적'이니, '나라를 미국에 팔아먹은 사람'이란 식으로 매도되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사태수습에 나섰다.
당시 그를 향한 비난 글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페이지 뷰가 높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삭제되지 않고 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업무적인 부분에 대한 욕은 그나마 참고 넘길 수 있었지만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초등학생 같은 사람들이 그저 욕설을 퍼부어놓은 글을 보면서 회의를 느꼈습니다. 응당 받아야 할 지적이라면 얼마든지 받겠으나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글을 보면서, 또 그 글을 쓴 이들이 자식뻘보다 어린 학생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습니다. 다른 자리로 옮겨 볼까도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욕을 먹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대로 눌러앉아 일을 해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 반대론자들의 비난이 무디어 갈 즈음 건강을 위협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구제역 사태 당시 갑자기 신종인플루엔자에 걸린 것이다. 쉬지도 못한 채 일하다가 면역 기능이 떨어진데다 전국 방방곡곡을 모두 방문해야 했기에 어디서 어떻게 걸린지도 몰랐다.
"새벽에 퇴근해 잠을 청하려는데 너무 춥고 떨려서 아내를 꼭 껴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돼도 펄펄 끓던 열이 내리지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신종플루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곧바로 휴가를 냈지요. 치료를 하고 한나절 쉬었을 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경기도로 넘어왔다는 긴박한 보고였습니다. 체온이 40℃가 넘었지만 그대로 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책회의장을 찾았습니다. 신종플루에 걸리면 휴가는 물론 격리조치를 받아야 하지만 주변에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신종플루가 완쾌된 데다 주변 직원 단 한 사람도 추가 감염이 없어 안도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했지만 광우병 파동을 수습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승진이 아닌 타기관 파견이었다. 사실상의 좌천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우황청심환을 매일 먹어야 될 정도로 심신이 피곤했다. 파견근무를 재충전의 기회로 삼은 셈이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그는 다시 본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고처리반장'이란 별명에 걸맞게 돌아온 그는 배추값 폭등이라는 사태와 맞닥드렸다. 복귀한 첫날부터 대책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배추값 때문에 여론은 다시 이 실장에게로 향했다. 배추값이 폭락한 올해는 "지난해 배추 많이 심으라고 해서 심었는데 이게 뭐냐"는 농민들의 항의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억울할 때도 있지만 공무원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는 설득의 차원이 아닙니다. 공무원 한 명이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과학적 근거와 국제기준에 따라 명확한 데이터로만 설명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제가 경험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 후배들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가끔씩 고향을 생각하며 힘을 얻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의 폐쇄성 때문에 서운할 때도 있다고 한다. 'TK가 고향이라면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나와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경남 밀양과 서울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그를 따돌린 것이다. 7명이나 되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절반이 대구와 경북에서 회계사와 사업가로 명성을 쌓고 있는데도 "너는 진짜 TK가 아니다"고 지적하는 친구들을 보면 섭섭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고향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전하면서 전북 익산에 조성되는 식품클러스터 사업을 거론했다. "먹을 게 없다고 소문나 있는 대구경북에 이 같은 단지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고향에 갖가지 웰빙음식들이 많은데 소개와 홍보가 안 됐을 뿐이지 선조들의 지혜를 보존'발전시키지 않은 우리 후손들 때문에 먹을거리가 없는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실장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매전초를 졸업했지만 경남 밀양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밀양중학교를 나왔다. 이후 서울로 유학, 경동고, 서울대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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