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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 보며 고향생각도 매∼일 해요…주문진 '21년 독자' 최광국 씨

고향 떠나 강릉 온 후론 3일 지나 每日 읽지만 날짜가 뭐 중요한가요?

21년째 강릉 주문진에서 매일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최광국 씨가 고향 소식을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21년째 강릉 주문진에서 매일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최광국 씨가 고향 소식을 보면서 활짝 웃고 있다.

"대구경북 사람은 타향살이를 해도 우리 고장 대표신문인 매일신문을 봐야지요. 대구경북 사람이 매일신문을 안 보면 누가 보겠습니까?"

최광국(63) 씨는 강릉시 주문진에서 매일신문을 받아보고 있다.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우보횟집을 경영하는 최 씨의 매일신문 사랑은 애틋하다. 주문진으로 이삿짐을 옮긴 후 매일신문을 21년째 구독하고 있다. "저처럼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소식을 전해주는 매일신문이 최고지요." 최 씨는 대구에서 주문진으로 이사한 직후인 1990년 1월 1일 매일신문사에 전화를 해 구독신청을 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기자가 횟집을 방문하자 우편으로 배달된 매일신문을 차곡차곡 쌓아둔 모습을 보여준다. "신문이 2, 3일 늦게 도착하면 어떻습니까?" 그는 매일신문에서 정겨운 고향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모교인 성광고등학교 동문회 소식이 실렸죠. 모교 기사를 보니 정말 반갑고 고맙더구만요." 그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매일신문을 열정적으로 읽는 덕분에 고향에 가면 친구들보다 자신이 대구경북 소식을 더 훤하게 알고 있어 친구들이 놀란다"고 자랑한다.

그가 운영하는 횟집의 상호인 '우보'도 자신의 고향(군위군 우보면) 지명에서 딴 것이다. 고향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상호를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최 씨는 부인 김숙희 (61) 씨와 결혼한 후 안 해 본 일이 없다.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군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에서 성광중'고교를 졸업했다. 동촌과 봉덕동 캠프 워크 앞 등지에서 중화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등 13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생활의 터전을 주문진으로 옮긴 것은 처남의 권유로 이뤄졌다고 한다. "낯설고 물선 주문진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씨는 "처음엔 현지인들이 '객지 것들'이라면서 설움을 많이 주기도 했다"고 애환을 털어놓는다. 주문진시장 한쪽에 작은 횟집을 열고 회 중개인 일을 시작했으나 외지 출신이라고 의도적으로 따돌려 아무리 높은 금액을 써 넣어도 번번이 낙찰에 실패했다는 것.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내가 제시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된 중개인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횟감을 구입한 후 그 자리에서 보란듯이 생선 광주리를 바다에 던져버렸죠." 결국 대구 사람의 기질을 한번 보여준 뒤에야 그들과 말을 트게 되고, 주민이자 동료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성광중학교 시절 럭비선수, 군대에서는 유격대 조교를 지냈다. 그만큼 성격이 적극적이다. 이런 성격과 애향심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주문진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뒤 대구경북은 물론 부산경남지역 사람까지 아울러 '영남향우회'를 조직했다. 조직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3년 동안 회장을 맡기도 했다. 영남향우회는 현재 회원이 25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최 씨는 종종 고향 생각이 날 때면 소주 한잔을 걸치고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라고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며 속을 달랜다. 그는 "고향지역 까마귀만 봐도 반가운 법인데 고향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살아봐야 진정한 애향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대구경북의 밝은 미래와 지역의 파수꾼인 매일신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했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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