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에서 캠핑을 떠나는 대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완행열차를 선택하여 여행의 묘미를 즐긴다고 했다.
'빠르게, 더 빠르게'. 현대사회는 빠름이 미덕인 시대다. 온갖 통신과 운송 수단은 스피드만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빠름 증후군'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심하다. 세상은 스피드가 보장하는 속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편리해진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속도에 휩쓸린 나머지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세상의 빠른 속도가 인간의 풍요한 마음의 척도를 빼앗아갔는지도 모른다.
◆대구역 풍경
06:30 6월 29일 오전 대구역 1번 플랫폼. 아직은 썰렁한 편이다. 배낭을 멘 70대 어르신 몇 분과 젊은 커플, 직장인 등 20여 명뿐이다. 6시 50분에 도착하는 대전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린다. 새벽 열차는 부지런해야 탈 수 있다.
06:45 열차도착 예정시각 5분 전. 서울행 KTX가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간다. 열차를 탈 사람들이 몰려들어 플랫폼이 금세 꽉 찬다. 흰색과 청색, 주황색으로 치장한 무궁화호가 들어온다. 우리는 이 열차를 그냥 보냈다. 속칭 '통근열차'로 불리는 다음 열차를 타기로 했다.
40분 동안 여유가 있다. 2번 플랫폼으로 건너갔다. 7명의 대학생을 만났다. 조길수(20'충남대) 김동완(20'동국대) 김수영(20'한양대) 조용빈(20'영남대) 윤시영(20'경북대) 최민준(20'영남대) 김석정(20'경북대) 군 등 모두 대학 1학년이다. 운암고 동창생인 이들은 양산 배냇골에 간다고 한다.
07:25 서울행 무궁화호 1204호 열차를 탔다.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손님들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젊은이들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역시 IT 강국다운 모습이다.
열차 문 앞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 잡은 한복렬(63'영천시 금호읍) 씨를 만났다. 구미에 있는 막내딸 집에 가는 길이다. "왜 시원한 열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짐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반찬거리를 한가득 담은 손수레가 열차 문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오전 5시 30분에 집을 나서 대구 칠성시장에서 반찬거리를 마련하여 대구역까지 왔다고 한다. 김덕영(56) 여객전무가 "안으로 들어가시라"고 권유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딸을 만날 생각에 행복한 표정이다.
▷열차 카페:3호차와 4호차 사이에 열차 카페가 있다. 음료수 자판기가 있고 양탄자도 깔렸다. 카페 분위기를 낸다. 창문도 넓어 바깥풍경이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열차 카페는 정기 통행권 손님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다. 정기통행권은 입석표다. 좌석을 배정받지 못해 모두들 열차 카페를 이용한다. 김덕영 여객전무는 "오늘은 평일이라 열차 카페가 조용한 편이지만, 주말이면 열차 카페도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소개한다.
07:45 왜관역에서 50여 명이 내린다. 왜관철교를 지나면서 지난 호우 때 무너져 내려 강물에 빠진 호국의 다리 모습이 보인다.
07:55 정시에 구미역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승객이 우르르 내린다. 갑자기 열차가 텅 빈 모습이다. 구미역을 빠져나가는 승객은 대부분 20대 젊은이와 교사, 직장인들이다. 역시 구미는 젊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대구에서 구미까지 정확하게 30분이 걸렸다. 이 정도 속도라면 김천까지 통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궁화호 열차도 결코 느린 것이 아니다. 다만 KTX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것뿐이다.
통근열차가 무궁화호 열차로 바뀌면서 통근열차란 이름은 사라졌다. 통일호 시절에는 출퇴근 시간대에 운행하는 열차를 '통근열차'라고 불렀다. 하지만 현재는 최고급 열차인 새마을호 바로 아래 등급이었던 '우등열차'가 이 임무를 맡고 있다.
◆완행열차
KTX가 등장하기 전에는 '통일호'라는 완행열차가 있었다. 물론 2000년 이전에는 '비둘기호'라는 최하위급 완행열차도 있었다. 2004년 4월 1일 KTX가 개통되면서 통일호는 운행을 종료했다.
그 대신 근거리는 CDC(통근형 디젤동차), 중장거리는 무궁화호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무궁화호가 완행으로 격하된 것은 아니다. 일정 노선에서 열차별로 선택정차하는 방식이다.
즉 열차가 완행으로 격하될 때 모든 간이역마다 정차해야 하므로 열차의 속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열차별 선택정차는 첫 열차가 전 역이 아닌 일부 역에 정차하면 그다음 열차는 앞 열차가 정차하지 않은 역을 위주로 정차해 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속도도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많은 역에 정차할 수 있다. 어쨌든 KTX 시대에 완행열차는 '스피드'와 '느림의 미학'의 동반자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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