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현장인 유태인 수용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한 아이가 부모와 헤어진다. 이 이별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군에 끌려가는 부모는 뒤돌아보며 오열하고, 아이도 손을 뻗어 애타게 엄마를 부른다. 이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이의 손끝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굳게 닫힌 철문까지 굽힌다.
영화 '엑스맨'의 돌연변이 초능력자 매그니토의 어두운 과거사다. 이 상처는 자신의 DNA까지 개조시켰고, 결국 인간에 대한 골이 깊어 악의 편에 서게 된다.
시리즈 1편인 '엑스맨'(2000년)의 도입부에 쓰인 이 장면은 현재 상영 중인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사진) 도입부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돌연변이의 탄생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엑스맨'의 초능력자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슈퍼 히어로들은 상처투성이의 인물들이다. '배트맨'은 부모가 강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고아이고, '스파이더맨'은 왕따에 아버지처럼 따르던 삼촌마저 살해된다. '데어데블'은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고, '슈퍼맨'은 부모를 잃고 지구에 떨어진 말 그대로 천애 고아다. 다른 슈퍼 히어로들은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지 '슈퍼맨'은 고향별이 파괴되는 바람에 돌아갈 곳도 없다. 그런 점에서 '슈퍼맨'은 가장 비극적인 상처의 주인공이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그 어떤 창과 칼날도 몸을 뚫을 수 없었던 지그프리드도 마음의 상처는 어쩔 수 없었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의 말대로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박노해 시인은 '상처가 희망이다'라는 시에서 "상처 없는 사랑은 없어라/ 상처 없는 희망은 없어라/ 네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네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니/ 그대 눈물로 상처를 돌아보라/ 아물지 않은 그 상처에/ 세상의 모든 상처가 비추니/ 상처가 희망이다/…"라고 했다. 상처 없는 삶이 없으니 그 상처마저 끌어안아 희망으로 만들자는 시인의 역설이다.
요즘 늘 생각하는 시가 있다. 독일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다. '내려놓으세요. 벗어놓으세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너무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자기애의 하나일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