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육식성

# 육식성 -박미영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오던 봄날

그 냄새를 맡았다

슬픈 하루였다

시장통 가로질러 스미는 고깃국 냄새

양파도 듬뿍 썰어 넣었나보다 아 맛있는,

갑자기 울면서 국물 후르륵 들이키고 싶었다

뜨거운 국물 들이키고 싶었다 너무 맛있는 건 늘 눈물겨워

불편한 산 어깨에 매달린 해가 양파 자루처럼 펼쳐진다

하루 종일 시내를 관통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애인은 여린 풀 같은 사내, 나를 구름처럼 쳐다보곤 했지

문 닫힌앞 생선 문 고양이 지나간다

애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먼지투성이 풀 끝에서 자잘하게

노란 꽃 핀다고, 버러지 보다 못한 것들이 걸어다닌다고

완강하게 고기를 거부했다 나는 이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아련하게 썩은 양파 냄새 풍긴다

시장통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는 모양이다

잘린 새 발가락 모양 연한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다

뜨거운 고깃국 후르륵 들이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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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허기는 재빠르게 육신의 허기를 몰고 와요. 그래서 실컷 울고 나면 이어 배가 고파요. 애인과 헤어졌는데 시장통 가로질러 스미는 고깃국 냄새가 환장할 듯 당기다니요. 울면서 국물 후르륵 들이키다니요. 엄마야, 이건 치미는 뜨건 울음을 마시는 거지요.

매력적인 시각을 가진 시인은 삶의 배반, 진실의 배반을 애인과 헤어짐으로 환치하고 있군요. 여린 풀 같은 애인, 고기도 먹지 못하는 애인, 나를 멀거니 구름처럼 쳐다만 보는 애인. 나는 그런 애인 필요 없답니다. 전투 같은 세상, 난장의 시간들을 검은 고무장화 신고라도 저벅 살아내야 하니까요.

뭐, 노란 풀꽃처럼 자잘하게 핀 애인이라니. 그런 허약한 식물성 애인이라니.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야. 세상이 너무 더러워서야. 그래서 나는 뜨건 고기국물 마셔야 해요. 그래서 이 육식성의 세상 울면서라도 건너야 해요. 여러분, 아프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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