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일은 멀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교실에 앉아 남은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열린 문으로 두 아이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건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당당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자식의 기를 죽이지 않겠다는 요즘 어머니들의 양육 효과가 느껴졌다.

한 아이가 말문을 열었다. 딱지치기를 했는데 우리 반에 있는 어떤 형이 자기의 딱지를 빼앗아 갔으니 그것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반 아이는 집에 갔는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일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해결하겠다고 타일러 돌려보냈다. 아이들은 1학년이었다.

아이들이 교실 문턱을 넘고 등을 보이며 몇 걸음 걸었을까. "도움이 안 되네" "교장실에 가자"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복도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그들을 다시 불렀다. 왜 도움이 안 되는지, 교장실에는 왜 가야 하는지 물었다. 당장 해결해 주지 않으니 교장실에 가서 말해야 한단다. 내일 해결해준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이 아닌 내일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먼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직 여리디 여린 아이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일곱 여덟 살 아이들의 대화가 땟물이 줄줄 흐르는 어른들의 말투와 너무나 흡사했다.

조급증을 이기지 못해 펄떡거리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기라도 할 때면 선생님에게 말할 틈도 없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한다. 지나가다 조금만 스쳐도 이유도 묻지 않고 손부터 올라간다. 다혈질이고 즉흥적인 아이들, 생각보다 말이,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요즘 아이들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이 어디 어린이들뿐 인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할머니가 자기 아이를 만졌다고 폭력을 휘두른 젊은 엄마. 옆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불편하다며 주의를 준 여든이 넘은 노부부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 이십 대 청년. 할머니가 못 마땅하고, 노부부의 말씀이 언짢았더라도 내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고, 내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두 아이의 대화를, 지하철의 젊은 엄마를, 이십 대 청년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들이,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행태를 보고 배워서 흉내를 내고 있다. 고함을 지르고, 책상을 두드리고, 멱살을 잡고 뒹구는 등 낯 뜨거운 장면들이 비일비재한 세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건만 여기저기 부실한 떡잎이 솟아 있다. 메마르고 비뚤어지지 않게 인내의 촉촉한 샘물을 뿌리지 못한 탓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내일이 아니라 내년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백금태<수필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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