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 사발에 퍼담아 내기만 하면 바로 정화수. 손으로 떠 마셔 본다. 시리도록 깨끗하다. 여름내 장맛비만 내렸을 뿐인 일월산에서 이토록 맑은 물이 어떻게 흘러내릴 수 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산은 계곡마다 생명수를 끊임없이 내려 곳곳마다 선녀탕을 이룬다. 영겁의 세월 동안 민초들의 한을 씻어준 생명수. 풀뿌리를 적셔주고 목마른 산짐승들을 모두 부른다. 온갖 물고기들을 놀게 한다.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다. 모든 생명체를 품 안에 감싸 안은 '반변천'은 여인네의 가슴이다. 젖줄이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동쪽 한 자락을 차지하는 물줄기다.
◆굽이치고 가파르게 내닫는 109.4㎞의 여정
길이 109.4㎞, 유역면적 1천973.11㎢의 반변천. 조선시대에는 '신한천'(神漢川)이라 했다. 반변천은 흐르면서 수비면 계동에서 문상천을 만나고, 송하계곡의 맑은 물을 머금은 장파천을 품는다. 일월 도곡에서 내려온 장군천과 영양읍 황룡리를 지난 동부천으로 제법 강다움을 보인다. 그러다 청기면을 거친 동천과 소청천, 신사천을 만나고 석보의 화매천, 청송군 진보면에서 여러 갈래의 물길을 담아 낙동강 동쪽 원류의 모습을 띤다.
반변천은 급경사와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형성한다. 이 때문에 영양읍 일월면 곡강리(曲江里), 영양읍의 원당지(元塘池)'연지(蓮池)'과대지 등의 하적호(河跡湖)가 '삼지동'(三池洞) 이라는 마을과 이름을 남긴다.
청송군 진보면에서 많은 지류를 합하면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부근에는 더욱 심한 감입곡류를 이루고 하폭이 좁은 횡곡(橫谷)을 형성한다. 진보면 어천리에서 구암산의 발원지인 용전천과 합류해 임하댐을 이루고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서 보현산이 발원지인 길안천과 합류해 서쪽으로 흐르다가 안동시 정하동에서 본류인 낙동강에 합류한다.
◆일월산 품속에서 찾아낸 반변천 발원지 '뿌리샘'
반변천은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일월산 품속 작은 '뿌리샘'(해발 680m)에서 시작된다. 영양군이 2009년 반변천 물길을 따라 올라 일월산 계곡을 6개월여 헤집은 끝에 '칠밭목이'에서 작은 동굴형태의 샘을 찾아 표지석을 세웠다.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반변천 발원지, 뿌리샘은 영양군민의 생명수다. 동굴형태의 샘은 고여 있지 않는다. 굴 속 바위틈에서 쉼없이 물이 흘러내려 샘을 이루고, 샘은 다시 그 아래로 머금은 물을 토해내면서 강을 만들어 낸다.
이곳 반변천 발원지는 용화리 대티골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알려지면서 숱한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족보를 뒤적이듯 뿌리샘을 찾아 자연의 신비로움을 배워간다.
일월산 용화리 입구에는 일제강점시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폐광산'을 자생화공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공원을 지나 차로 5분쯤 달리면 '반변천 발원지 7㎞'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 윗대티골에서 내려 마을을 지나 발원지로 갈 수 있다.
◆반변천은 어류도감,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없다?'
뿌리샘에서부터 생명체가 꿈틀댄다. 도롱뇽이 산다. 뿌리샘이 뿜어낸 맑은 물은 가느다란 실개천을 만들고 그곳 돌무덤 속에 가재가 웅크리고 있다. 용화리 국도 31호선을 따라 머무를 듯 이어지는 반변천, 하천 바닥이 폐광 광미로 불그스레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여전히 물고기가 살고 있다. 수년 전 매일신문 일월산취재팀은 이곳에서 1급수 지표어종인 '버들치'와 '금강모치'를 잡아 올렸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깨끗해졌다. 연준모치'열목어'어름치와 같은 냉수성 어종인 금강모치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일월면 섬촌리, 일월산 중턱 샘물내기가 발원지인 장군천과 가천리에서 만난다. 소(沼)와 여울이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1급수종인 '쉬리'를 만날 수 있다. 별명이 '연애각시'다.
영양군이 '반변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사한 반변천 수생생태계 자료에 따르면 35종의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갈겨니'버들치'피라미'긴몰개'돌고기 등이 많이 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1급수종들을 비롯해 녹색 바탕에 얼룩말 무늬의 수수미꾸리, 새코미꾸리, 칼납자루, 큰납지리, 퉁사리, 꺽지 등이 산다.
반변천과 화매천이 만나 이루는 흥구소 등 임하댐과 가까워질수록 '쏘가리'들이 해거름 녘 물 밖으로 솟아 오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안동대 이종은 교수(생명과학과)는 "반변천 수계에는 한국 특산종이 많이 살고 있다. 특히 임하댐에서는 수입어종과 치리'동자개'빙어 등 다른 하천에서 옮겨온 어종은 거의 볼 수 없다"며 "아마도 어떤 지류들보다 가장 맑고 깨끗한 상태의 자연생태환경을 간직한 곳일 것"이라 했다.
◆굽이마다 절경 연출하는 반변천 '자연이 살아 있다'
반변천은 굽이마다 절경을 연출하면서 각종 생명체들을 품어 오고 있다.
'척금대'. 1692년(숙종 18년) 현감 정석교가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면서 척금대라 이름 지었다. 비록 홍수로 솔숲이 사라지긴 했지만 척금대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면 반변천 맑은 물이 수백 척 반월형 석벽을 끼고 유유히 흐르고 거울처럼 맑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깨끗한 모래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반변천은 척금대와 함께 절벽 위에 솟아있는 여기봉'약수천'지석암'병풍암'반월산'이수곡'동만곡 등 '곡강팔경'(曲江八景)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양읍 감천1리 마을 앞을 끼고 도는 반변천의 깎아지른 절벽에 붙어 있는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
측벽에 매달린 소나무'단풍나무'산벗나무가 유달리 빽빽한데 측백수가 들어선 석벽에는 기묘한 바위와 수림이 어울려 신비롭기만 하다.
영양군 반변천 생태하천사업 자료에 따르면 반변천 주변에는 주로 피'달뿌리풀'소리쟁이'쇠뜨기'명아주'애기똥풀'사초 등이 자란다고 한다.
특히 반변천 유역에서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지정된 삵과 수달, 담비를 포함해 22종의 포유류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고라니'고슴도치'관박쥐'너구리'담비'두더지'땃쥐'애급쥐'오소리'집박쥐 등이 대표적이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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